군대에 지원한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질 때에도 언제나 앞장서서 용감히 싸웠습니다. 그는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만사가 잘 풀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자 그는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대령은 그에게 어디로든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기 때문에 갈 곳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형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전쟁이 다시 일어날 때까지 머무르게 해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러나 냉혹한 형들은 그를 매정하게 대했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너 같은 놈이 필요하지 않으니 너 혼자 알아서 살아가도록 해라.”
그래서 총 한 자루밖에 가진 것이 없었던 병사는 그 총을 어깨에 멘 채 세상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는 황량한 벌판에 들어섰는데 그 곳에는 몇 그루의 나무들이 서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무 아래 앉아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슬픔에 잠겼습니다. 돈도 없고 무기를 다루는 기술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평화가 선포되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초록색 저고리를 입은 사람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위엄 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불쌍하게도 한쪽 다리가 나무로 만든 의족이었습니다. 그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네. 이제 자네는 돈과 재산을 등에다 져야 할 만큼 많이 얻게 될걸세. 하지만 나는 돈을 헛되게 쓰고 싶지 않으니까 먼저 자네가 겁쟁이인지 아닌지 시험을 해봐야겠네.”
그러자 병사가 대답했습니다.
“군인은 절대로 두려움이 없어요. 자, 당장이라도 시험해 보세요.”
“좋아. 뒤를 돌아보게!”
병사가 뒤를 돌아보니 집채만한 곰 한 마리가 그를 향해 다가오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병사가 소리쳤습니다.
“네 이놈! 그 실룩거리는 코를 한 방 먹여 줄 테니 어디 한 번 계속 으르렁거려 보아라.”
그는 총을 들어 곰의 코를 겨냥해서 정확하게 한 방을 쏘았습니다. 총소리와 함께 곰은 그 자리에 푹 쓰러져서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알겠네. 자네는 겁쟁이가 아니군.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네.”
“영혼을 팔아 넘기는 일만 아니라면 어떤 것이든지 하겠어요.”
병사는 그 사람이 악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인지 들어 보고 직접 판단하게나. 앞으로 7년 동안 세수를 하지 말고 머리나 수염을 깎지도 말고 손톱을 자르지도 말고 주기도문을 외우지도 말게. 그리고 내가 저고리와 외투를 줄 테니 항상 그걸 입고 다니게. 만일 자네가 7년 안에 죽는다면 자네는 내 것이 될걸세. 그러나 살아 남는다면 자네는 평생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고 게다가 엄청난 부자가 될걸세.”
병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고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겨 그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악마는 초록색 저고리를 벗어 병사에게 건네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옷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항상 돈이 가득 들어 있을걸세.”
그런 다음 악마는 곰가죽을 벗기면서 덧붙였습니다.
“이것이 자네가 입고 잘 외투일세, 자네는 반드시 이 외투 속에서 자야지 침대에서 자면 안 되네. 이제 자네 이름은 차림새하고 걸맞게 곰가죽이라고 하게.”
말을 마치고 악마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병사는 저고리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습니다. 악마가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곰가죽을 어깨에 걸치고 휘파람을 불며 세상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즐거운 일만을 찾아다녔고 아낌없이 돈을 썼습니다. 처음 일 년 동안은 그래도 사람 같은 모습이었으나 그 다음 해에는 거의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완전히 덮였습니다. 수염은 짐승의 털처럼 꺼칠꺼칠했고 손가락은 까마귀발톱과 같았습니다. 얼굴은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서 그 곳에 씨앗을 뿌리면 싹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서워서 길을 피해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는 곳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나눠 주면서, 자기가 7년 동안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돈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음식과 잠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4년째가 되던 해 그는 어느 여관에 이르렀으나 여관 주인은 그에게 방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머니에서 금화 한 줌을 꺼내자 여관 주인은 금세 허리를 굽신거리며 그를 별채로 안내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 곰가죽 사나이를 보면 여관의 평판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곰가죽이 방 안에 홀로 앉아 하루빨리 7년이 지났으면 하고 간절히 생각하고 있을 때 옆방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원래 동정심이 많았기 때문에 못 들은 척할 수가 없어서 방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방 안에는 한 노인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곰가죽이 다가가자 노인은 펄쩍 뛰며 달아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곰가죽은 따뜻한 말로 노인을 위로하며 사연을 물었습니다. 노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산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더니 마침내 하나도 남지 않아 이제 그의 딸들이 굶어 죽게 되었으며, 여관 주인에게 지불할 돈도 없어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곰가죽이 노인을 보고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돈이라면 내게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는 여관 주인을 불러 노인의 방값을 지불하고 불쌍한 노인의 주머니에 금화를 가득 넣어 주었습니다.
이제 모든 걱정이 일순간에 사라진 노인은 그에게 어떻게 감사를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곰가죽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따라오시오. 내 딸들은 대단히 아름답다오.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아내로 삼으시오. 그 아이가 누구든 젊은이가 내게 베풀어 준 은혜를 알게 되면 절대로 거절하지 않을 것이오. 물론 젊은이는 아주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아이는 순식간에 젊은이를 제 모습으로 만들어 줄 것이오.”
이 말을 들은 곰가죽은 대단히 기뻐하며 노인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큰딸은 곰가죽을 보고 너무나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둘째딸은 그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저런 짐승 같은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겠어요? 차라리 얼마 전에 도착한 서커스단의 곰과 결혼하는 게 낫겠어요. 그 곰은 얼굴의 털도 깎고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도 배웠잖아요? 그리고 깨끗한 군복을 입고 흰 장갑까지 끼었다구요. 깨끗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 그 곰이 백 배는 낫겠어요.”
그러나 막내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곤경에 처한 아버지를 도와주었다니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어요. 아버지께서 그 보답으로 결혼을 약속하셨다니 그 말을 지키셔야죠.”
곰가죽의 얼굴은 온통 먼지와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막내딸의 말을 듣고 그의 얼굴이 얼마나 빨개졌는지 우리가 직접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둘로 쪼개어 반쪽은 그녀에게 주고 다른 반쪽은 자신이 가졌습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준 반쪽에는 그의 이름을 쓰고 자신이 간직한 반쪽에는 그녀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반쪽의 반지를 잘 간직하라는 당부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3년을 더 방황해야만 하오. 만일 그 때가 되어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죽은 것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오.”
가엾은 신부는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자신의 슬픈 약혼자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을 본 언니들은 그녀를 비웃고 경멸했습니다.
큰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심해야 할걸. 네가 손을 내밀면 그 사람은 앞발로 네 손목을 부러뜨리고 말거야.”
또 둘째도 거들었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보라구. 곰들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니까. 그가 널 한 입에 먹어 치우고 말거야.”
“너는 그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할걸.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무너지도록 으르렁거릴 테니까.”
“결혼식 날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곰들이 모여들어 춤출 것 아냐?”
신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으며 용기를 잃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한편 곰가죽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착한 일을 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나눠 주며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침내 7년의 마지막 날이 되자 그는 악마를 만났던 들판으로 갔습니다. 조금 있으려니까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악마가 씁쓸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악마는 곰가죽에게 낡은 저고리를 던져 주고 초록색 저고리를 되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곰가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소. 나를 깨끗이 씻겨 주는 일이 남았지 않소.”
할 수 없이 악마는 물을 떠와서 곰가죽의 얼굴을 씻기고 머리를 빗기고 손톱을 깎아 주어야 했습니다. 악마가 그를 다 씻기자 곰가죽은 다부진 병사의 모습이 되었고 7년 전보다 훨씬 잘생긴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악마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곰가죽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시내로 들어가서 멋진 저고리를 사 입고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마차에 올라탄 다음 신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훌륭한 장교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딸들이 있는 방으로 그를 안내했습니다.
곰가죽이 두 언니들 사이에 앉자 그들은 포도주를 따라 주고 맛있는 음식을 집어 주며 야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는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편 검은 옷을 입은 막내딸은 맞은편 자리에 앉아 눈길을 주지도 않았고 말도 한 마디 꺼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딸들 중 한 명을 아내로 삼아도 좋겠냐고 묻자 두 딸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장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다투어 침실로 달려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장교가 자기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검은 옷을 입은 막내딸과 단둘이 남게 되자 곰가죽은 반지 반쪽을 품에서 꺼내 포도주잔에 떨어뜨린 다음 건너편의 신부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잔을 받아 포도주를 마신 그녀는 잔 바닥에서 반지를 발견하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천으로 싸서 항상 목에 걸고 다녔던 반쪽의 반지를 꺼냈습니다. 두 쪽의 반지는 꼭 들어맞았습니다.
“내가 당신의 약혼자요. 당신은 나를 곰가죽으로 알고 있을거요. 자비로우신 하느님 덕분에 나는 사람의 모습을 되찾고 다시 깨끗하게 되었소.”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품에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옷을 갈아입은 언니들이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은 잘생긴 젊은이가 막내를 선택했고 그 사람이 바로 곰가죽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우물에 몸을 던졌고, 또 한 사람은 나무에 목을 맸습니다.
날이 저물었을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습니다. 신랑이 문을 열었더니 그 곳에는 초록색 저고리를 입은 악마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별 일은 아니네. 하지만 자네 목숨 대신에 두 사람의 영혼을 얻게 되었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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