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향해 던져라, 달에라도 떨어질테니
블로그 애서(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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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12

속죄양

프로토클라비거 트라이코덴스(Protoclaviger trichodens)라는 학명의 이 딱정벌레는 오늘날 개미동물(myrmecophile animals)군의 최초 조상으로 유력하게 추정된다. 개미동물은 개미 소굴에 함께 거주하면서 밀접한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동물들을 말하는데 딱정벌레 중 일부 종이 이런 특수 관계를 맺고 있다. 프로토클라비거 트라이코덴스의 후손들은 개미를 속이기 위해 5200 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했다. 그들의 후손인 클라비제리테(Clavigeritae)는 개미의 더듬이를 속이기 위해 자신들의 더듬이를 조상의 것에서 개미의 것으로 진화시켰고, 복부에 있는 분절들은 융합해 개미를 속이는데 더 유리하게 변형시켰다. 그들은 진화를 외관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표면을 독특한 기름..

신성한 매춘

시리아 해안에서 배를 타고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키프로스라는 섬이 있다. 키프로스 섬의 모든 여자들은 결혼을 하기에 앞서 의무적으로 여신의 신전에서 외부인에게 몸을 팔아야 했다. 그것은 명백히 욕정의 환락이 아닌 엄숙한 종교적 의무였다. 어느 날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 여신상과 사랑에 빠져, 그것을 침실로 이끌었다. 왕은 신상(神像)과 결혼하는 순결한 의식을 통해 신적인 신랑이 되어 신전의 신성한 매춘부 중 하나와 교접했다. 신상(神像)의 여신은 아프로디테와 아스타르테 등 그 밖에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간에 키프로스 왕들에게 그들은 그저 신성한 매춘부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 * * *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

신성한 왕의 살해

아비시니아 서쪽 청나일강 계곡 파조클(Fazoql)의 왕은 더 이상 그 나라의 남자·여자·나귀·황소·가금류 따위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나라의 모든 것들을 위해 기꺼이 죽어야 했다. 언젠가 파조클(Fazoql)의 한 왕이 비극적인 운명에 반기를 들며 성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부인과 모친은 왕에게 이기적인 집착으로 불명예를 저지르지 말라며 너의 아버지와 같이 죽으라 강하게 요구했다. 올가미는 왕관의 무게를 따라 단단하게 왕의 목을 조였고, 파조클(Fazoql)의 왕들은 그렇게 운명에 순순히 복종하며 땅을 향해 조아리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 * * * 해충이 되기 전까지, 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타적인 삶이라는 것은 여간 신경 쓰..

식전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 기도는 당신을 원망했던 기도요 어제 먹었던 것들에 대한 속죄의 기도외다 나의 조상, 사탄의 죄로 그대는 나의 어머니로 하여금 이들을 먹게 하였나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 기도는 당신을 원망하는 기도요 오늘 먹은 것들에 대한 속죄의 기도외다 나의 오늘, 어머니의 죄로 그대는 나로 하여금 이들을 먹게 하였나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 기도는 당신을 원망할 기도요 내일 먹어야 할 것들에 대한 속죄의 기도외다 나의 후손, 나의 죄로 그대는 나의 여식으로 하여금 이들을 먹게 하였나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 죄는 당신이 먹게 하였음이요 내가 이들을 먹음에 지은 죄는 사함이 마땅하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허룩한 희생에 거룩한 영광을 주시옵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간절히 바라고 ..

창작/시 2020.11.07

자각몽

딸깍과 깜박. 저 먼 곳 굽이친 시궁창까지, 소리와 암흑은 그 무엇보다 빠르게 닿는다. 시궁창의 그 녀석도 이를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깨달으리라. 분명, 굽이굽이 눌러넣은 불길을 누구보다 빠르게 수직으로 지나올 것이다. 사사삭, 그녀석이다. 침대에 누운 귓가에 사악한 그 녀석의 소리가 몰려온다. 다시 불을 킨다면 될 터이지만 설익은 밤을 놓칠까 쉽사리 그러지 못한다. 소리는 어제도 들렸고, 오늘도 들렸으며, 놓칠 것이기에 내일도 들릴 것이다. ‘해야, 밝아라 해야!’ 해야, 할 일을 깨닫는가, 아니면 날이 밝기를 되뇌이며 그저, 눈감고 잠들뿐일런가. 떠오르는 불길을 굽이굽이 눌러 넣는다. 딸깍 그리고 깜박.

창작/시 2020.11.07

육계명

누군가 빼앗은 씨앗에 왜곡이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언젠가 세월이 바다에 흘러 육신이 사하였을 때 사육신도 함께 세월에 깊이 잠겨버렸으리라 어디선가 왜곡은 깨끗이 정미되고 더럽게 정의되어 무엇인가 기다리던 이들의 입속에 들리라 어떻게는 중요치 않고 왜는 곡이 될지니 세상의 노래는 왜곡만이 불리워지리라 땅이 메마르고 곳간에 왜곡만 가득하여 아무개가 비 오길 불을 켜리니 비 온 뒤 불길 타고 발화한 씨앗에 재 남은 광야의 먹 끝이 발하기 바라나리라

창작/시 20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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