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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허난설헌 평전 3

허난설헌 평전 / 허난설헌은 누구인가 / 허균의 평 - 허난설헌의 천재성

누님이 일찍이 "시를 지으면 운율이 맞다."고 스스로 자랑하며 소령 짓기를 좋아하였다. 그것을 내 속으로 "남을 속이는 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시여도보]를 보니 구절마다 그 옆에 모두 권점이 있었다. 어떤 자는 전청, 전탁이며 어떤 자는 반청, 반탁이라 하여 글자마다 음을 달았기에 시험 삼아 누님이 지은 시를 가지고 맞춰보니, 어떤 것은 다섯 자, 어떤 것은 세 자의 착오가 있을 뿐, 크게 서로 어긋나거나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야 누님의 타고난 재주가 아주 뛰어남을 알고 머리 숙이고 그 뒤를 따랐다. 누님은 공들이는 것을 아꼈는데도 이루어 놓은 것은 이와 같았다.

허난설헌 평전 / 허난설헌은 누구인가 / 여성관직(여상서, 여수재, 여학사)

[궁사]의 여상서라는 벼슬은 중국 동한과 위나라에 있던 여성관직으로 궁중 문서의 직무를 맡았다. 중국에서는 여성들도 벼슬을 했는데 명나라 때 여성들은 여수재가 되어 상공국에 근무했고, 덕종 때는 시부와 경사대의를 시험보아 여학사라 불렀다. 조선시대 여성이 아무리 뛰어난 글재주를 가져도 과거시험에는 응시할 수 없었고 벼슬길도 열지 못했다. 따라서 난설헌은 남성과 같이 어엿하게 글 짓는 벼슬을 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고, 자신을 여상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하므로 조선 땅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과 중국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세 가지 한스러움 안에 들어간 것이다. 난설헌은 여상서의 눈으로 궁중의 모습을 20수에 걸쳐 읊으면서 대리만족을 누렸다.

허난설헌 평전 / 허난설헌은 누구인가 / 난설헌의 출가

난설헌의 출가는 대체로 15세 전후로 보이는데 오빠 하곡과 친했던 김성립을 남편으로 맞이하였다. 허균은 매형에 대해서 그리 좋은 평을 하지 않았는데, 김성립은 결혼 후에도 급제를 하지 못하다가 누이 난설헌이 사망하던 해에 생원으로 기축증광시의 문과 병과에 급제했고 벼슬은 홍문관 정자를 지냈다. 부인을 잃고 난 후 곧 군자감정 홍세찬의 딸을 부인으로 다시 얻었으며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임진왜란 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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