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향해 던져라, 달에라도 떨어질테니
블로그 애서(愛書)

리뷰/책

황금가지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돈달원 2020. 11. 17. 15:18
반응형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레 신화와 종교에 대한 생각 또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화와 종교의 기원이 오래인 만큼

  현대인의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잘 아는 듯 잘 모르는 신화와 종교.

 

  이러한 신화와 종교를 신학의 관점이 아닌 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해

  특정한 종족이나 종교에 한정하지 않고 비교하고 연구한 책, 

  프레이져의 황금가지입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1890년 초판이 간행되고,

  1936년까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발행된 책으로

  프레이저가 일생을 받친 책이라 할 수 있는데요.

 

  프레이저가 당시 영국의 식민지에 나가 있는

  행정관, 군인, 선교사, 학자들과 편지를 나누고

  관찰 자료들을 수집하여 신화 연구를 집대성한 책입니다.

 

  해가 지지 않은 나라라 불렸을 만큼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었던 대영제국.

 

  때문에 프레이저는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네팔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전설과 신화들을 모아 비교 정리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프레이저는

  여러 나라에 걸친 종교, 주술, 제의 신화의 기원 연구를 통해

  인간의 주요한 본질적 유사성을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프레이저는 영혼의 불멸과 죽음의 부정, 풍요의 기원 등

  인류의 보편적 테마를 추출하는 한편,

  주술, 종교, 과학에 대한 관점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피력하였는데요.

  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관점이었는지는 몰라도

  100여 년 전에 나온 책인 만큼

  오늘날엔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글에선 프레이저가 집대성한 세계 각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류의 본질적 유사성과 보편적 테마에 관해 얘기 해볼까 합니다.

 

레길루스 호수의 전투

 

  개들과 독수리들에게 미리 점지된

  라티움의 이름을 뽐내는

  모든 호전적인 도시에서

  저 용맹한 군대가 몰려왔다.

 

  세티아의 자줏빛 포도원에서

 

  노르바의 유서 깊은 성벽에서

 

  가장 자랑에 넘친

  투스쿨룸의 새하얀 가로에서

 

  검푸른 바다 위에 걸쳐 있는

  여자 마법사의 요새에서

 

  아리키아의 나무 아래 잠자는

  조용하고 거울 같은 호수에서...

 

  그 나무 아래 섬뜩한 그늘 속에

  살해자를 살해하고

 

  장차 자신도 살해당할 사제,

  음산한 사제가 군림한다...

 

  레길루스 / 호수의 전투

 

 

#모든 학문에는 위대한 원류가 존재한다

 

  황금가지의 이야기는 로마 근교의 작은 마을,

  아리키아 지역에 위치한 네미 숲의 호수에서 출발합니다.

 

  이 호숫가에는 야생동물의 수호여신이자 가축과 대지의 여신,

  그리고 남녀의 생식과 농업, 해산의 여신인

  우리에게는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디아나의 신전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디아나 여신

  그리고 이곳에는 숲의 왕이라 불리는 사제가 머물렀는데요.

  그는 디아나의 연인 비르비우스이자

  그곳의 성스러운 나무의 영혼으로 숭배되었습니다.

 

  비르비우스 즉 사제가 되는 방법은 아주 이상했는데요.

  그 방법은 바로, 기존의 사제를 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

 

  황금가지의 성스러운 나뭇가지를 꺾고

  기존의 사제를 죽여

  새로이 숲의 왕이 된 사제.

 

  로마가 멸망할 때까지도 존재하던

  살해자이자 살해당할 자가 군림하는 이 잔인한 계승법.

 

  프레이저의 신화 연구는 바로 이 기이한 관습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되는데요.

 

  도대체 디아나의 사제인 숲의 왕은 왜 전임자를 살해해야 했는가?

  그리고 그는 왜 전임자를 살해하기에 앞서

  베르길리우스의 황금가지와 동일시되었던 어떤 나뭇가지를 꺾어야 했는가?

 

  이후 프레이저가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은

  마치 미스터리들을 풀어가는 한 편의 추리 소설과 같습니다.

 

  네미의 의식을 둘러싼 매듭의 실타래를

  서로 다른 역사 시대의 수많은 문화 속에서

  마치 탐정과 같이 관찰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동원하며

  인류가 이떤 동기에 의해 이러한 관습을 행한 것인지 답을 찾아 나아갑니다.

 

  프레이저가 세계 각지의 이야기를 단서로 풀어낸 네미의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는데요.

 

  원시인의 관념에서 숲의 왕은 인간과 신을 중개하는 사제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 신 그 자체로서 숭배받았으며

  신이자 왕인 숲의 사제를 초자연적 존재로 인식하였는데,

  그에게는 자연의 운행에 영향을 미쳐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주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운명은 부족의 운명과 동일시되었는데요.

 

  건강하고 정력적인 왕은 자연과 인간의 생산성을 보장하지만,

  노쇠한 왕은 질병과 장애를 가져오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쇠약한 왕은 적당한 시기에 살해되어야 했고,

  인류는 자신들을 위한 새롭고 강한 왕을 추대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성한 왕의 살해는 주로 제의적 살해로 나타났는데,

  이 행위는 부족의 장래를 위해 행해지는

  비인격적이면서도 아주 거룩한 행위였습니다.

 

  때문에 후대에 이르면 이러한 제의적 살해는

  사제왕의 자식이나 노예, 포로, 동물의 희생,

  또는 인형 등으로 대치되었고,

  나중에는 상징적 희생 의식만 남게 됩니다.

 

  숲의 왕, 신의 살해, 속죄양

 

  오랜 관습으로 행해지던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내면에 아직까지도 알게 모르게 내재 되어있고

  또 보편적인 테마로 이야기되며 공감을 받고 있는데요.

 

  시험이나 시합에 앞서 어떤 행동을 금기시 하는 징크스 같은 것이나

  인터넷 기사나 sns 등에서 나라의 재앙과 우두머리에 관해 얘기하는 것 등

  현대에도 그 예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러한 테마는 문학작품 같은 현대의 이야기들에도 나타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설국과 열차,

  꼬리에서 머리로

  커티스, 윌포드, 남궁민수의 죽음과 마지막 생존자 요나와 티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뿐만 아니라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수많은 작품들에 내재되어 오늘날에도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인만큼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그중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안데스 산맥 동쪽 기슭에 사는 볼리비아의 인디언 부족인 유라카레족은

  아버지가 아들들의 팔 위에 기묘한 시술을 행한다.

 

  시술자는 독한 향신료를 바른 매우 날카로운 원숭이 뼈로 

  자기 아들의 팔뚝 살갗을 찝어올려

  마치 외과의사가 천선을 끼우듯이 뼈를 수차례 관통한다.

 

  그는 이러한 시술을 반복하여

  젊은 아들의 팔에 어깨부터 손목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낸다.

 

  때문에 이 부족의 거의 모든 사람은 쿨루쿠테라고 부르는 상처로 덮여있다.

 

  이와 같은 시술이 끝나면 그들은 저녁까지 먹고 마시며 피리를 불고 노래하며 춤춘다.

 

  비와 천둥과 번개도 이들의 향연을 막지 못한다.

 

  젊은 남자들의 팔에 구멍을 내는 것은 그들이 능숙한 사냥꾼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저는 이 이야기를 보고 만화 속 인물 하나가 떠올랐는데요.

  이 인물은 헌터X헌터라는 일본의 유명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하나인데

  이 이야기의 부족과 많이 닮아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구멍에 악기적인 요소를 넣어 춤을 추듯 싸운다는 작가 자신만의 설정을 더했지만

  부족의 전통으로 구멍을 내 능숙한 사냥꾼이 됐다는 설정은 비슷합니다.

 

  비슷한 설정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봉의 온제크 마을에서 한 프랑스인 선교사가

  늙은 판족 추장의 오두막에서 잠을 잤다.

 

  새벽 두 시경 낙엽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서 불을 켜보니

  끔찍하게도 극히 위험해 보이는 커다란 검은 뱀이 한쪽 구석에 똬리를 틀고서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눈을 반짝이고 아가리로 쉭쉭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로 있는 것이 아닌가!

 

  본능적으로 그는 총을 움켜잡고 뱀을 겨누었다.

 

  그때 갑자기 누가 그의 팔을 때리며

  불이 켜지더니 늙은 추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쏘지 마라! 쏘지 마! 제발 부탁하네.

   저 뱀을 죽이면 나를 죽이는 거야."

 

  "두려워 할 것 없네.

  저 뱀은 나의 엘란젤라라네."

 

  그렇게 말하면 추장은 뱀 옆에 털썩 무릎을 꿇고

  두 팔로 감싸며 가슴에 뱀을 꼭 끌어안았다.

 

  판족의 마법사들은 모두 성인식 때

  어떤 혈맹의식을 통해 특정한 야생동물의 목숨과 자기 목숨을 하나로 합쳤다고 여긴다.

 

  동물의 귀와 자기 팔에서 피를 뽑아

  동물한테는 자기 피를, 자기한테 동물 피를 주입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후 둘 사이에는 아주 긴밀한 합일이 일어나

  한쪽의 죽음이 다른 한쪽의 죽음을 수반하게 된다.

 

  마법사들은 그 혈맹관계가 자신들의 힘을 엄청나게 세게 해

  여러 방면으로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여긴다.

 

  우선 무엇보다도,

  자기 목숨을 몸 밖의 어떤 안전한 장소에 숨겨놓은 설화 속의 마법사처럼

  판족의 마법사는 이제 자신이 불가침의 존재라 여긴다.

 

  나아가서 자신과 피를 교환한 동물은

  친구가 되어 자신이 내리는 명령은 어떤 것이든 따를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그것을 이용하여 적을 해치거나 죽일 수 있다.

 

  마녀나 마법사가 이와 같이

  신비스러운 동맹을 맺는 짐승이나 새는 한 개체이지 결코 종 전체가 아니다.

 

  그 동물의 죽음은 그 사람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개별적인 동물이 죽으면 동맹은 자연히 끝이 난다.

 

  이 이야기는 마법사에 관한 유명한 소설.

  jk롤링의 해리포터 속

  볼드모트와 내기니, 호크룩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이 작가들이 이 이야기들에서 직접적으로 모티브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블의 토르 시리즈가 북유럽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듯,

  세계 각지의 신화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인만큼

  학술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이야기 모음집이란 생각으로 황금가지를 읽어

  인류의 보편적 테마와 더불어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합니다.

 

  이상 황금가지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