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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 두 아들에게 띄우노라 / 집안을 일으키는 길은 오직 독서뿐

돈달원 2021. 4. 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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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 만물 중에는 자연 그대로 온전해야 좋은 것이 있다. 이런 것들은 기이하다고 이러쿵저러쿵 떠들 필요 없다. 오히려 망가진 것이나 찢어진 것을 잘 고치고 다듬어 온전하게 만들어야만, 더 요긴하게 쓸 수 있으며 그 공덕을 찬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고쳐야 훌륭한 의원이라 칭송받고, 위태로운 나라를 구해야 뛰어난 장수라고 이름을 떨칠 수 있다.
  대대로 높은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들이 관직을 얻고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 집안이라면 평범한 자제라도 능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너희는 폐족(廢族, 망한 집안사람)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잘 처신해야 한다. 너희가 슬기롭고 굳건하게 극복하여 본래의 가문보다 더 훌륭하게 만든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장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폐족의 자손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무엇이겠느냐? 오직 독서, 한 가지 길밖에 없다. 독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참맛을 알지는 못한다. 권세 있는 부잣집 자제라고 그 맛을 아는 것도 아니고, 시골의 가난한 천재라고 그 오묘한 이치와 깊이를 옹글게 음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벼슬하던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있고, 도중에 뜻밖의 고난을 당한 너희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다. 부잣집 자제나 시골 천재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뜻도 모르면서 그냥 읽기만 한다고 하여 다 독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대(三代)를 이어 오지 못한 의원이 지어 준 약은 먹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문장 또한 그러하다. 대대로 글하는 집안이라야 문장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돌이켜 보면 내 재주가 너희보다 조금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서는 나아갈 방향을 알지 못했고, 열다섯 살에 서울로 올라왔으나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만 했을 뿐 얻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 후 스무 살 무렵에 과거 공부에 힘써 소과에 합격한 뒤 태학(성균관)에 들어갔다. 여기서 또다시 대과에 응시하기 위해 4자구, 6자구 등의 변려문(騈儷文)에 골몰했다. 곧 대과에 합격하고 초계문신으로 뽑혀 규장각으로 옮겨 가서는 한갓 글귀만 다듬는 공부에 거의 10년이나 몰두했다. 그렇게 책을 교열하고 펴내는 일에 바쁘다가 황해도 곡산부사로 부임해서는 오로지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정신을 쏟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으나 서학(천주교)관계로 신헌조와 민명혁에게 탄핵을 받고 말았다. 그 이듬해에는 정조 대왕이 승하하셔서 비통한 마음으로 서울과 시골을 바삐 오고 가다가 지난봄에 유배형을 당했다. 그러니 거의 하루도 독서에 마음 쓸 시간이 없었다. 하여, 내가 지은 시나 문장은 과거 시험의 답처럼 틀에 박혔고, 좀 낫게 지은 것조차도 관각체(館閣體)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그런데 이제 나는 머리털과 수염이 희끗희끗하고 기력도 시들고 말았으니, 어찌 운명이 아니겠느냐. 

  학연아! 너의 재주와 총명함은 내가 젊었을 때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네가 열 살 때 쓴 글은 내가 스무 살에 지은 것보다 훨씬 낫고, 요즘에 쓴 글은 지금의 나로서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더러 있었다. 아마도 네가 효과적으로 공부했고 견문이 넓기 때문일 게다. 네가 곡산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의 일이 생각나느냐? 내가 너에게 과거 공부를 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 그 당시 너를 아끼던 문인과 선비들은 모두 나를 욕심쟁이라고 나무랐단다. 본격적으로 학문을 시킬 일이지, 왜 과거 따위를 시키느냐고 말이다. 사실 과거에서는 학문의 참뜻을 알 수 없으므로, 나 또한 마음이 허전했었다. 그러나 이제 너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게 되었으니 더 이상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 생각에 너는 충분히 진사도 되고 과거에 급제할 실력이다. 학연아! 너는 글하는 선비로서 과거의 폐단에서 벗어나는 것과 과거에 급제하는 것 중 어느 것을 택하는 게 낫겠느냐? 어느 편이 나은지는 잘 알 것이다. 너는 독서하기 좋은 때를 만났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집안이 망했기 때문에 오히려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둘째 학유야! 너의 재주와 역량은 형보다 약간 부족한 듯싶구나. 그러나 성품이 자상하고 생각하는 사고력이 깊으니, 독서에 온 마음을 기울이면 어찌 형보다 못할 수 있겠느냐? 요즈음 네 글을 보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더구나. 내가 알고 있으니 용기를 가져라.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근본부터 세워야 한다.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두었다면 필히 근본부터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근본이란 무엇이냐? 바로 효제(孝悌)이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그 근본을 확립하면 학문은 자연스레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 그런 뒤에는 특별히 독서의 단계를 따질 필요가 없다. 

  나는 천지간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지라 오로지 의지할 것이라고는 글과 붓뿐이다. 문득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이나 한 편의 글을 짓게 되면, 혼자 읊조리며 감상하다가 ‘이 세상에서 오직 내 아들들에게나 보여 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희는 독서에서 마음이 멀리 떨어져 나가 쓸데없는 물건처럼 글자를 보는구나. 쏜살같이 몇 년이 지나면 너희는 장정이 되고 수염도 자랄 것이다. 그때 우리가 갑자기 만나면 데면데면하고 살가운 정을 느낄 수 있겠느냐? 더욱이 이 아비의 책을 읽으려고나 하겠느냐? 

  조나라의 장군 조괄은 천하에 불효자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 훌륭한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참말로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쓴 책들은 쓸모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마음의 빗장을 걸어 닫은 채 아무 의욕도 할 일도 없는 사람이 되어 흙으로 빚은 인형에 불과하고, 열흘도 못 가서 병이 날 것이다. 이 병은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가 글을 읽는 것만이 아비의 목숨을 살리는 길이다. 깊이 생각해 보거라.

  -1802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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