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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어우야담

어우야담 / (104) 기리단

돈달원 2020. 12. 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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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축국天竺國의 서쪽에는 구라파歐邏巴가 있다. 구라파는 방언으로 대서大西를 말한다. 그 나라에는 하나의 도道가 있으니 그를 일러 기리단伎利檀이라고 하는데 방언으로는 하늘을 섬긴다(事天)는 뜻이다. 그 도는 유儒도, 불佛도, 선仙도 아니다. 별도로 한 단서를 세워 무릇 마음을 정하고 행사함에 하늘을 거스르지 않으나, 열국列國에서는 각각 천존상天尊象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받들고 섬긴다. 그리고 도교와 불교와 유교를 마치 원수처럼 배척한다. 우리가 칭술하는 것과 같은 점이 많으면서도 그 근본이 되는 큰 줄기는 현격하게 다르다. 불교에 대하여는 윤회의 설을 심하게 배척하나 천당과 지옥은 있다고 여긴다. 그 도의 풍속은 결혼하는 것을 숭상하지 않고 평생토록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는 자를 선택하여 군장君長으로 삼아 교화황敎化皇이라고 부른다. 그는 천주天主를 계승하여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 세상을 깨우치며, 세습할 후사도 두지 않고 어진 이를 택하여 그의 후사로 세운다. 개인적인 가정도 없이 오직 공무에만 힘쓸 뿐이며, 또 자식도 없이 억조億兆의 백성들을 자식으로 여길 뿐이다. 그 도의 경서는 대략 회교의 것과 같이 왼쪽을 위로 삼아 가로로 써 행을 만든다. 그 도의 신부(士)는 붕우간의 교제를 중하게 여기고 많은 사람들이 천문天文과 성상星象에 정통하고 있다.
  만력 연간에 이마두(Matteo Ricci(마테오 리치)의 한역(漢譯). 이탈리아 야소교회(耶蘇敎會)의 전도사. 명대(明代) 만력간(萬曆間)에 광동(廣東)에 갔다가 후에 북경(北京)으로 가서 전도함. 천문(天文)·지리(地理)·의학(醫學) 등을 가르쳐 서양문화 이입의 원조가 됨)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구라파에서 태어나 8만 리를 두루 유람하고 남월에 10여 년을 머물면서 능히 천금의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버리고 중국으로 들어가 성현제자聖賢諸子의 책을 모두 관람하고 계유년(1603)에 상하권 8편으로 이루어진 저서를 지었다.
  수편首編에서는 천주天主가 비로소 천지를 창조하고 주재하여 안양했다는 것을 논했고, 제2편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천주에 대해 그릇되게 인식하고 있는 점을 해설했으며, 제3편에서는 인간의 혼이 불멸한다는 사실이 금수와는 크게 다른 점이라는 것을 논했으며, 제4편에서는 귀신과 사람의 혼령 및 천하 만물이 해서는 안되는 것을 논했으며, 제5편에서는 윤회輪廻와 육도六道의 설이 그릇되다는 것을 변론했으며, 제6편에서는 뜻(意)은 없앨 수 없다는 것을 해명하고 천당지옥과 선악의 응보에 대해 해설했으며, 제7편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는 것을 논하고 천주의 바른 배움(正學)에 대하여 기술했으며, 제8편에서는 서양의 풍속을 총괄적으로 들어 교를 전파하는 성직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뜻의 원인을 논하고 아울러 천주가 서토西土에 강생한 유래를 해설하였다.이 책의 제목은 『천주실상天主實象』인데, 천주는 하느님(上帝)을 의미하고, 실實은 불공不空을 의미하는 것이니, 노불老佛의 공空과 천天을 배척한 것이다. 그 책의 말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한나라 애제哀帝 원수元壽 2년(b.c. 1) 동지 후 3일에 그 나라에 정녀貞女가 강림하여 비록 남자와 관계한 바 없어도 그녀의 태胎를 빌려 남자아이를 낳았으니 그 남자아이의 이름이 야소耶蘇이다. 야소는 세상을 구한다는 뜻이며 그가 몸소 가르침을 세웠다. 한나라 명제明帝(57년)에 이르러 서역西域에신인神人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구하였는데 미처 반절도 못가 몸을 앓게 되자, 불경을 얻어가지고 돌아와, 그것을 성교聖敎라고 그릇 전달하게 되었다.
  중국의 소창기小窓記와 속이담續耳譚에 이마두에 관한 일과 마두瑪竇가 지은 우론友論 및 동혼의銅渾儀, 곤의坤儀, 여도팔폭輿圖八幅 등이 모두 자세하게 실려 있다.
  이마두는 대개 이인이다. 천체의 현상과 지리에 관해 널리 변설하였는데 이치에 합당한 말이 매우 많다. 그러나 그 풍속에만 구애되어 천당지옥의 설과 결혼하지 않는 것을 옳다고 여겨 괴이하고 기만함 또한 많다. 그런데도 근래에 여러 나라에서 이 교가 자못 행해지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특히 심하다. 이마두의 여도에 나타난 해양의 여러 나라를 보니 중국이 동쪽 모퉁이 한편에 치우쳐 있어 작기가 마치 손바닥만 하고, 우리나라는 버들잎만 하며, 서역이 천하의 중심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 설에 복종할 수 없으니 나라에 이를 전한 자가 망령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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