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여우가 죽은 다음 늑대가 청혼을 하러 왔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여우 마나님의 하녀인 고양이가 문을 열었습니다. 늑대가 인사를 던지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녕하시오. 케레비트의 고양이 처녀.
웬일로 혼자 계신가?
뭐 맛난 거라도 만들고 있는 모양이지?”
그러자 고양이가 대꾸했습니다.
“빵을 빻아서 우유 안에 넣고 있어요.
오셔서 맛이라도 보세요.”
“아니, 됐소. 그런데 여우 마나님은 안에 계신가?”
그러자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방에 앉아 계시지요.
슬픔에 젖어 흐느끼고 계세요.
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리시는지.
주인 아저씨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러자 늑대가 말했습니다.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남편감을 원한다면
이 몸이 왔다고 전해 주게나.”
고양이는 쏜살같이 달려 올라가서 꼬리를 잠시 뱅뱅 돌리다가 거실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다섯 개의 금가락지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마님, 안에 계세요?”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습니다.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남편감이 필요하시면
마침 적당한 분이 오셨는데요.”
여우 마나님이 물었습니다.
“빨간 바지를 입고 입이 뾰족하더냐?”
“아뇨.”
“그럼 나와는 맞지 않는다.”
늑대가 퇴짜를 맞고 돌아간 다음 계속해서 개, 사슴, 산토끼, 곰, 사자, 그리고 숲의 모든 동물들이 차례차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죽은 여우가 가졌던 여러 가지 좋은 점 중에서 한 가지도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매번 구혼자를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여우가 나타났을 때 여우 마나님은 물었습니다.
“그 신사분이 빨간 바지를 입었더냐? 입이 뾰족하더냐?”
“네.”
“그럼 모시고 올라와라.”
여우 마나님은 그렇게 말하고 혼인 잔치를 준비하도록 일렀습니다.
“자, 창문을 활짝 열어라.
주인 아저씨가 확실히 나가도록.
그 양반이 쥐를 많이 잡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혼자서 먹어 치웠단다.
나는 입도 못 댔어.”
그러고 나서 젊은 여우와 여우 마나님은 결혼을 했습니다. 춤과 환호가 이어졌습니다. 도중에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도 춤이 계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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