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곳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더니 나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 쫄쫄 굶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 세상으로 나가서 우리의 운명을 바꿔보는 것이 좋겠다.”
형제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그래서 삼형제는 길을 떠났습니다. 곡식이 자라는 푸른 들판을 수없이 지나갔지만 삼형제에게는 별로 운이 따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커다란 숲에 도착했습니다. 숲 한가운데에는 산이 솟아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온통 은으로 된 산이었습니다.
“그렇게 애태워 찾았던 행운이 여기에 있었구나. 난 이거면 됐다.”
첫째가 말했습니다. 맏형은 은을 잔뜩 짊어지고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두 동생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우리 행운은 그까짓 은 정도가 아닐거야.”
두 형제는 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며칠을 걸어갔더니 온통 금으로 된 산이 나타났습니다. 둘째는 걸음을 멈추고 요리조리 머리를 굴렸습니다.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이를 어쩐다? 금을 잔뜩 가지고 가서 평생을 걱정 없이 살아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계속 가야 하나?”
마침내 둘째는 주머니란 주머니에는 모두 금을 가득 채우고 동생에게 작별을 고한 다음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막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까짓 금은이 별건가. 나는 행운을 잡을 테야. 나에게는 더 큰 행운이 나타날거야.”
그렇게 사흘을 걷자 끝없이 펼쳐진 어마어마하게 큰 숲이 나타났습니다. 막내는 먹고 마실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숲이 어디쯤에서 끝나는지 알아나 보려고 나무 위로 기어올라갔습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 보아도 보이는 것은 나무 또 나무뿐이었습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밑으로 내려오면서 막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배를 한 번만 채울 수 있었으면!”
나무 밑둥에 다다른 막내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한 상 잘 차려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막내는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소원 한번 때맞춰 이루어졌구나!”
막내는 누가 음식을 가져왔고 누가 요리를 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음식상으로 가서 게걸스럽게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자 그는 식탁에 깔린 식탁보를 숲 속에 그냥 두고 간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식탁보를 잘 접어서 배낭에 집어넣었습니다. 얼마를 더 가니까 날이 저물고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막내는 그 식탁보를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땅 위에 식탁보를 펴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또 한 상 받아 보았으면!”
말이 끝나자마자 식탁보 위에는 먹음직스런 음식이 잔뜩 차려졌습니다.
“솜씨 한 번 기막히구나. 너만 있으면 산더미 같은 금은도 부럽지 않아.”
막내는 마법의 보자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자기 하나만 덜렁 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살기에는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내는 세상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행운을 끝까지 좇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호젓한 숲길을 걷고 있는데 온몸에 검댕칠을 한 숯장이가 보였습니다. 숯장이는 감자를 막 먹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안녕하시오, 검둥이 양반. 이 외딴 곳에서 무엇 하나요?”
막내가 물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매일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지요. 저녁은 늘 감자랍니다. 좀 드시려우? 이리 와요.”
숯장이가 말했습니다.
“아니, 됐습니다. 혼자 먹기도 모자랄 텐데 귀한 양식을 축낼 수야 없지요. 괜찮으시다면 오히려 제가 한턱 내고 싶은데요.”
“누가 요리를 한다는겁니까? 내가 보기에는 댁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데. 이 근방에서 댁한테 요리를 갖다 줄 사람도 없을 테고.”
“어쨌든 평생 처음 맛보는 기가 막힌 요리가 나올 테니 두고 보세요.”
그러면서 막내는 배낭에서 보자기를 꺼내 바닥에 펼친 다음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 상 차려다오, 보자기야!”
눈 깜짝할 사이에 보글보글 하는 소리를 내며 요리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방금 주방에서 내온 것처럼 김도 모락모락 났습니다. 숯장이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군침이 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와락 달려들더니 그 검은 입으로 커다란 고깃점을 넙죽넙죽 잘도 삼켰습니다. 배가 터지도록 먹은 뒤 숯장이는 씩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 보자기가 썩 마음에 드는구려. 요리사라곤 구경도 못하고 이런 숲 속에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보자기가 안성맞춤이외다. 내가 제안을 하지요. 저기 보면 늙은 군인이 메던 배낭이 하나 걸려 있소. 무척 낡기는 했지만 저래뵈도 마법을 가졌어요, 나한테는 더 이상 필요없으니 그 보자기와 가꿉시다.”
“어떤 종류의 마법을 가졌는지 먼저 알고 싶은데요.”
여행자가 물었습니다.
“손으로 톡톡 두드리면 하사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무장한 부하 여섯 명을 데리고 나타날겁니다. 뭐든지 명령만 내리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거 괜찮군요. 좋아요, 바꿉시다.”
막내는 숯장이에게 보자기를 주고 고리에 걸려 있던 배낭을 꺼내 어깨에 둘러멘 다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얼마 동안 걷다가 막내는 마법의 배낭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배낭을 톡톡 두드리자 일곱 명의 우람한 병사가 나타나더니 그 중에서 하사가 물었습니다.
“주인님, 무슨 일을 할까요?”
“당장 숯장이에게 가서 내 마술 보자기를 가져오너라.”
병사들은 일제히 ‘좌로 돌아’를 하더니 어느새 보자기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숯장이에게서 보자기를 빼앗아 오는 그런 정도의 일은 식은죽 먹기인가 봅니다. 막내는 이제 물러가라고 이른 다음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큰 행운이 기다릴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해질 무렵 또 다른 숯장이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 역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금에 감자뿐이지만 이리 와서 같이 먹읍시다. 기름은 없소. 내 옆에 와서 앉으시우.” 검댕칠을 한 숯장이가 말했습니다.
“아니, 됐습니다. 사실은 제가 한턱 내고 싶은데요.”
그러더니 땅 위에 보자기를 펼쳤습니다. 맛있는 요리가 순식간에 차려졌습니다. 두 사람은 신나게 먹고 마셨습니다. 배를 가득 채운 뒤 숯장이가 말했습니다.
“저기 선반 위에 낡은 모자가 하나 있는데 신기한 힘을 가졌다오. 누구든지 저 모자를 쓴 다음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돌리면 대포알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열두 문의 대포를 동시에 쏘는 것과 맞먹는 엄청난 포격이지요. 저 대포를 당해낼 장사는 아무도 없어요. 눈에 보였다 하면 뭐든지 때려 부수니까요. 나한테는 필요없는 모자니까 당신 보자기와 바꿉시다.”
“좋습니다.”
막내는 모자를 쓴 다음 보자기를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얼마 가지 않아 배낭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잠시 후 병사들이 다시 보자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좋은 일만 계속되는군. 아직 내 행운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야.”
옳은 말이었습니다. 하루를 더 걸으니까 세 번째 숯장이가 나타났습니다. 그 숯장이도 기름 없는 감자를 권했습니다. 막내는 다시 마술 보자기로 기름진 요리를 숯장이에게 대접했습니다. 숯장이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더니 뿔피리와 보자기를 바꾸자고 했습니다. 그 뿔피리는 모자와 또 다른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뿔피리를 세게 불면 먼저 담과 성벽이, 그 다음에는 마을과 도시가 무너져 내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막내는 서슴지 않고 마술 보자기를 내주고 뿔피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병사들을 보내어 보자기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배낭과 모자와 뿔피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젠 부러울 것이 없다. 집에 가서 형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자.”
집에 와서 보니 두 형은 금과 은으로 지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었습니다. 형들은 누더기 옷에 다 떨어진 모자, 닳고 닳은 배낭을 메고 나타난 막내를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두 형은 동생을 비웃었습니다.
“꼴 좋다! 금과 은을 비웃고 행운의 별을 좇아간다더니. 화려한 옷을 입고 임금님이 마차를 타고 오시려나 했더니 웬걸, 영락없는 거지 몰골이로군 그래.”
이렇게 야멸차게 쏘아붙이고는 두 형은 동생을 쫓아냈습니다. 화가 난 막내는 배낭을 두드렸습니다. 미친 듯이 배낭을 계속 두드리다 보니 어느새 150명의 병사가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막내는 형들의 집을 에워싸라고 명령한 다음 그 중 두 사람에게 형들이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개암나무 회초리로 매질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엄청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곤경에 빠진 두 형을 도우려고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병사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왕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노발대발하면서 장군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말썽꾼을 도시 밖으로 몰아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막내는 배낭을 두드려 병사의 수를 더욱더 늘렸습니다. 장군이 거느리고 온 부대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내가 그 깡패 녀석을 혼내 주고야 말 테다!”
왕은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다음 날 왕은 더 많은 군사를 보냈지만 오히려 더 형편없이 당하기만 했습니다. 막내는 배낭을 두드려 더욱 많은 군사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게다가 싸움을 빨리 끝내기 위해 모자를 뱅글뱅글 돌렸습니다. 대포알이 우박처럼 쏟아지자 왕의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주를 내 아내로 맞이하고 내가 왕의 이름으로 온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는 싸움을 끝내지 않겠다.”
막내는 호통을 쳤습니다.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딸에게 말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구나. 그 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겠다. 평화를 되찾고 왕위를 지키려면 너를 보내야겠다.”
그래서 결혼식이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속이 상했습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촌놈처럼 초라한 보자기에 낡은 배낭을 메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없앨 수 있을까 그 방법만 궁리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배낭 안에 마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애교를 부렸습니다. 남편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기다려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 가방 보기 싫으니 제발 벗을 수 없어요? 부끄러울 정도예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이 배낭은 나한테 가장 소중한 물건이오, 이것만 메고 있으면 세상 어느 것도 무섭지 않아.”
그러면서 그 배낭에 담겨 있는 마법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내는 입맞춤을 하려는 척 남편을 끌어안다가 남편의 어깨에서 배낭을 슬쩍 들어내서 그것을 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혼자가 되자 아내는 배낭을 두드려 병사들을 불러낸 다음 전 주인을 붙잡아 왕궁 밖으로 끌어내라고 말했습니다. 병사들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못 놓은 아내는 다시 더 많은 병사들에게 남편의 뒤를 쫓아가 나라 밖으로 몰아내라고 일렀습니다.
만약에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남자는 그렇게 당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남자는 모자를 몇 번 뱅글뱅글 돌렸습니다. 그러자 대포알이 튀어나오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박살냈습니다. 공주가 직접 가서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애걸복걸하면서 애원을 하자 남자는 겨우 화를 풀고 아내를 용서했습니다.
그 뒤로 여자는 살랑살랑거리면서 남편을 사랑하는 것처럼 굴었습니다. 얼마 지나자 남편은 아내에게 또 넘어갔습니다. 그는 설령 누가 배낭을 훔쳐간다고 하더라도 이 낡은 모자가 있으니까 끄떡없다고 비밀을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비밀을 알아낸 아내는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모자를 빼앗은 다음 남편을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뿔피리가 있는 것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남편은 온 힘을 다해 뿔피리를 불었습니다. 그러자 담도 성벽도 마을도 도시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왕과 공주는 그 바람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뿔피리를 멈추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이 부서지고 지금쯤 돌멩이 하나 변변히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뒤로 사람들은 그 남자에게 감히 대들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왕이 되어 온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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