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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어우야담

어우야담 / 200) 홍문관 체직의 어려움

돈달원 2021. 2. 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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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문관에서는 돌아가면서 번갈아 당직하였으니 당나라 시대 영주瀛洲 18학사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숙직하는 인원들에 대해 수찬修撰 이상은 상번이라 칭하고 수찬 이하에 대해서는 하번下番이라고 칭하였다.


  동료에게 당직을 바꿔 줄 것을 청할 때는 반드시 서리를 보내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동료에게 말을 전하였으니, 혹은 남곽南郭으로 혹은 동성東城이나 청파동靑坡洞장의동莊義洞으로 멀리 왕복해야 했다. 그 임무를 맡은 서리는, 빗속을 뚫고 눈을 무릅쓰며, 진흙탕에 빠져 신이 벗겨진 채 맨발로, 땀을 비 오듯 흘려 옷을 적시면서, 동분서주하느라 마치 소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갑에게 청하여 오지 않는다고 하면 을에게 청하고, 장삼張三에게 청하여 오지 않는다고 하면 이사李四에게 청하였다. 도착한 곳에서 병을 핑계하고 허락하지 않을 때마다 서리들은 반드시 내 자식 놈이다라고 가만히 욕을 했고, 날이 저물어 대궐 문이 곧 닫힐 것 같으면 길을 따라가면서 내 자식 놈이다라고 드러내 놓고 욕했다.

  정자正字 중에 나이 젊은 신진관이 있으면 서리들은 그가 흥이 나서 마음 내켜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찾아가서 강청하곤 했는데, 그런데도 허락하지 않으면 서리는 크게 노하여 이놈은 진실로 천생 내 자식 놈이다라고 욕을 하며 돌아왔다.

 

  옛날에 강신姜紳이 여 일 동안 숙직으로 묶여 있었는데도 바꿔 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궁궐 안을 벗어날 수 없었다. 때는 물색도 이미 변하여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형인 서緖에게 체직 해줄 것을 강하게 요청했지만 강서는 항상 취해 있으면서 와 주지를 않았는데, 그가 하루는 술이 불그스레 취한 채 들르니, 강신이 한편으로는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워 말했다.

 

  "형님께서는 어찌하여 집 안에서 늘 취해 계시면서 나를 이토록 피곤하게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강서가 거짓으로 화를 내며 말했다.

 

  "네가 불쌍해서 왔더니 감히 나를 원망하는 것이냐?"

 

  그러더니 옷소매를 떨치며 나가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강신은 또다시 허다한 날들을 갇혀 숙직한 후에야 나올 수 있었다.

 

  이성임李聖任은 폭염 속에서 한 달여 동안 숙직했으므로 이대해李大海에게 날이 저물면 와 달라고 청하였다. 관의 아전이 이대해를 기다리고 있다가 대궐 문이 장차 닫히려고 할 시각에 이 교리께서 오신다는 말을 전했다. 이성임은 크게 기뻐하며 의관을 갖추고 밖에 나와 궐문 안에 서 있다가 이대해를 보고는 꾸짖었다.

 

  "어째서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 것이오."

 

  그때 이대해의 발은 대궐 문에까지 이르렀다가 이 말을 듣자 다시 말을 타고 되돌아가 버렸다. 이성임은 감히 궐문을 나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 숙직해야만 했다.

 

  옛날에는 궁궐을 숙직하는 것이 매우 엄하여 숙직하고 나가는 자는 거만하였고 숙직하러 들어오는 자는 구차하였다. 요즈음에는 들고 나는 것이 모두 기강을 잃어 비록 관직을 파면시키겠다는 조정의 논평이 뒤를 이어도 태연하여 기강에 얽매여 동요하는 법이 없으니, 이로써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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