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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어우야담

어우야담 / (311) 장원 탈취

돈달원 2021. 3. 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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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목李穆과 김천령金千齡은 글을 잘 짓는다는 명성으로 서로 우열을 다투었다. 이목의 재주가 더욱 뛰어났지만 과거장에서는 서로 장원이 될 거라고 추어 주었다. 하루는 과거 시험장에서 시험 제목이 삼도부三都賦로 정해졌는데 김천령이 이목에게 시문의 첫 구를 보여 달라고 청하니 이목이 말하였다. 나는 지엽적인 말을 없애고 간략하게 하려고 마음먹고 있소. 그 첫 구는 다음과 같았다.

 

  하夏의 우禹왕은 십이산十二山을 맡았고 우虞의 순舜임금은 구주九州를 의탁했도다.

 

  김천령은 이를 보고 이목이 두려웠으나 일부러 웃으며 말하였다.

 

  "오늘 시험장에서는 공이 나에게 장원을 양보해야 하겠소. 고시관이 이러한 제목을 낸 의도는 2경京과 3도都를 읊은 웅장한 문자를 보고자 해서인데 당신은 옛 구를 답습하여 늙은 선비의 말을 짓고자 하시오?"

 

  이목은 천령의 말을 그럴 듯하게 여겨 일필휘지로 고쳐 썼다.

 

  오늘 밤은 어떤 밤이기에 천풍天風이 불어오는고!

 

  김천령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이목이 지었던 첫 구를 취해서 글을 간략히 하여 제출하였는데 이목은 1백여 구를 넘치게 지어놓고 수습할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패하고 말아 김천령이 장원이 되었다.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과 이홍남李洪男은 글재주로 우열을 다투었다. 알성시의 표문表文이 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 편찬을 청함으로 제목이 정해졌다. 이홍남이 먼저 첫 구를 지어 말했다.

 

  생각하며 배우고 배우며 생각한다. 말함에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함에 말을 돌아본다.

 

  임당은 마음속으로 놀라며 두려워했으나 일부러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제목은 시험관이 군자를 들이고 소인을 물리친다는 논설을 보고자 하는 것이오. 당신은 나에게 장원을 양보해야겠소."

 

  이홍남은 성격이 경박했던지라 곧장 고쳐 군자를 내고 소인을 물리친다는 것으로 첫 구를 삼았다. 임당은 이홍남이 버린 것을 가져다 첫 구로 삼아 마침내 장원이 되었고 이홍남은 이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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