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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별순검 수사일지 - 검안-

별순검 수사일지 -검안- / 잊혀진 여인 / 격쟁

돈달원 2021. 4. 1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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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원은 안으로 들어가 대청마루에 부복했다. 금방이라도 빗발이 날릴 것 같은 날씨 탓에 김 감사가 배려했다. 이가원은 품속에서 검고 칙칙한 물건을 내놓았다. 그것은 침술사가 쓰는 대침 같은 것으로 검게 퇴색하고 군데군데 삭아 있었다. 아전이 집어 건네자 김우현이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뭣이냐?"
    
  "죽은 누이의 몸에서 나온 물건입니다. 사또, 누이는 부정을 저질렀다 하여 봉분을 올리지 못한 채 세 해를 지나왔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만들었습니다만, 사흘 전 시생 꿈길에 찾아와 눈물 흘리며 절을 하고 돌아서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누이가 세상을 버린 지 꼭 세 해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소인이 이름난 풍수사를 대동하여 양지바른 곳으로 이장하려 어제 누이 무덤을 파헤쳤습니다. 한데, 뼈만 남은 누이 주검에서 바로 그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검고 칙칙한 물건을 아전에게 다시 건네며 김우현은 상대의 흥분을 다독거렸다.
    
  "자네 누이는 죽은 지 세 해가 지났네. 그렇다 보니 사체를 담았던 관도 삭았을 것이야. 관에 박은 못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세월이 흐르면 이렇듯 빛이 바래네. 자네도 봤지 않은가. 녹이 벌겋게 슨 것을!"
    
  "사또, 소인이 꽹과릴 두들겨 재수사를 청한 건 그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소인이 그 물건을 발견한 위치는 누이의 머리였습니다. 그 물건이 누이 머리에 꽂힌 것으로 보아 누군가 누일 살해하고 대들보에 매단 게 분명합니다. 이것은 유씨 집 안에서 누이를 살해한 후…."
    
  "네 이놈! 죽은 자 몸에서 나온 것이 살인 도구라는 증거라도 있느냐? 네 놈의 누이가 자진했을 당시 모든 조사가 이루어졌거늘 무덤에서 가져온 지저분한 물건 하나때문에 어찌 재조사를 한단 말이냐! 허나, 네 놈 말에도 일말의 의문은 있으니 당시의 시장(屍帳;시체 검시 기록)과 시형도(屍形圖;상처 부위를 표시한 그림)를 살펴 의혹을 가려 내마. 무엇 하나 이상이 없을 시엔 네놈의 볼기가 거덜 날 줄 알아라!"
    
  이내 형방(刑房)에게 3년 전 시장을 찾게 하고 항인(行人;안내인)에게 서찰을 주어 한양으로 말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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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쟁이란 이유 있는 '재조사 청구'다.
  조선 왕조 초기, 명목상으로 시행된 '신문고'가 제 역할을 못하자, 힘이 없고 나약한 백성들이 재조사를 청구할 유일한 방편이 '격쟁'이었다.
  자손이 조상을 위해, 종이 주인을 위해, 처가 남편을 위해, 동생이 형을 위해 왕이 거동하는 길이나 관아의 문 앞에서 꽹과리나 징을 두들겨 탄원할 수 있는 제도였다. 다만, 사소한 일로 격쟁하거나 마을 사람들이 수령을 유임시키고자 격쟁하는 것은 장(杖) 1백 대를 치는 것이 <속대전>의 법제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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