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안元士安은 선조조의 문관이며 명사이다. 그의 형수 남씨南氏가 일찍 죽었는데, 원사안의 작은 누이동생 원씨元氏는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상태였다. 하루는 누이동생 원씨가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더니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제멋대로 지껄이며 자칭 남씨라고 하였다. 원사안 형제가 ‘누이동생’이라고 부르면 곧
“나는 당신들 누이동생이 아니고 형수 남씨요. 당신들 누이동생 혼은 저기에 있소.”
라고 말하면서 창 사이의 빈 공간을 가리켰으니, 이는 남씨 혼이 원래 있던 곳을 떠나 원씨 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목소리와 행동거지가 다 남씨였던 것이다. 어떤 때는 혼이 떠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들어오기도 하였는데, 혼이 떠나가면 누워서 신음하며 아파했고 혼이 들어오면 일어나 용모를 바르게 하고 남씨의 말씨로 말하였다.
이렇게 일 년여를 지내니 원씨의 기운은 더욱 상하여 거의 구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원주原州는 원씨 집안의 본관으로 거기에 옛 별장이 있었다. 원씨 부모가 딸을 데리고 원주로 돌아갔는데 원래는 귀신을 피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그 귀신 또한 그들을 따라와 원씨를 못살게 굴었으므로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하루는 그 귀신이 나가 놀면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수염과 눈썹이 희고 풍채와 거동이 범상치 않은 장부가 정당249에 내려와 말하였다.
"나는 너희 선조다. 내 자손이 귀신 씌었다는 말을 듣고 너에게 좋은 처방을 알려주러 왔다. 여주와 원주의 경계에 우만雨灣이라는 강江이 있다. 강 속으로 수십 걸음 들어가면 길이는 수 촌數寸이고 둘레는 한 촌쯤 되는 자줏빛 돌이 수십 개 있을 것이다. 너희 형제 중에 사용士容은 용렬하고 노둔하니 이 일을 맡기에 부적합하다. 사안 네가 그곳에 가서 돌을 가져오면 내 마땅히 선택해 주겠다."
원사안이 그 말에 따라 우만에 가니 강 가운데 사주250가 있었다. 그곳에서 과연 자줏빛 돌 수십 개를 주워 와 장부에게 바치자 장부가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모두 진짜가 아니다. 다시 가서 살펴보아라."
원사안이 다시 가서 강의 옅은 여울을 살펴보니 또 수십 개의 돌이 있었다. 모두 주워 가지고 오자 장부가 손수 가려 뽑더니 그 중 하나를 골라 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경귀석警鬼石이라고 이름하는데 암컷 수컷이 있으며 항상 용왕의 책상 위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마침 근자에 용왕이 밖에 나가 노닐자 이 돌이 잠깐 나와 호수에 온 것이다. 수컷은 네가 다시 찾을 줄 알고 호수의 깊은 곳으로 피해 들어갔으니, 지금 네가 얻어 가지고 온 것은 암컷이다. 애석하다! 네가 처음 갔을 때 두 개를 다 얻어 왔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 돌의 영이함은 다른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다. 모든 귀신들이 이 돌의 그림자만 봐도 피해 달아날 것이니 마땅히 허리띠에 이것을 차고 있어라. 절대로 몸에서 떼어내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혹 와서 구해도 주는 것을 삼가해라."
원씨가 이로부터 밤낮으로 이 돌을 차고 있으니 그 귀신이 문밖에 와서는 서성대다가 결국 들어오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이후로 다시는 오지 않았다. 이후로 장안의 사대부 집에서 귀신이 들면 이 돌의 영이함을 듣고 와서 지극정성으로 구걸하였다. 원사안이 차마 거절할 수 없으면 혹 주어 차게 하였는데 그때마다 효험이 있었다.
일찍이 이 돌을 벽 위에 걸어놨다가 간 곳을 몰랐는데 후에 술독에서 찾았다. 이는 벽 위에 걸려 있던 돌이 술독 안으로 잘못 떨어진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돌의 신령한 기운이 조금 손상되어 대부분 효험이 없었다.
'이야기보따리 - 책 > 어우야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우야담 / (78) 기지로 공훈을 얻어 낸 선비 (0) | 2020.12.16 |
---|---|
어우야담 / (74) 노비 출신 반석평 (0) | 2020.12.15 |
어우야담 / (68) 신숙주를 수호한 신동 (0) | 2020.12.10 |
어우야담 / 62) 신막정 집 귀신 (0) | 2020.12.09 |
어우야담 / (61) 태의 양예수의 신술 (0) | 2020.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