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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가 젊었을 때 알성시(과거 시험의 일종)을 보러 갔다. 한밤중에 벗과 함께 성균관에 가다가 길 위에 한 물체가 입을 벌려 길을 다 막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윗입술은 하늘에 붙어 있고 아랫입술은 땅에 붙어 있었다. 같이 가던 친구는 겁을 내고 뒷걸음질 쳐 달아나 다른 길로 갔으나 신숙주는 곧장 양 입술 가운데로 들어갔다. 그 입술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한 동자가 있어 절을 하고 말했다.
"선비를 따라 놀기를 청하옵나이다. 오직 분부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신숙주가 고개를 끄덕이니 이때부터 동자는 따라다니며 신숙주에게 조금도 어려운 일이 없도록 해 주었다. 신숙주는 마침내 과거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였고, 무릇 좋은 일이나 나쁜 일 등이 있으면 미리 먼저 그 일의 길흉을 동자에게 물었으며, 그의 지도를 따르면 불길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신숙주가 일본에 갈 때도 동자가 바람을 잔잔하게 하고 파도를 고요하게 하여 마침내 바다를 쉽게 건너갔다 올 수 있었다. 신숙주가 세조를 섬겨 수훈首勳에 봉해져 태정(삼정승을 달리 이르는 말)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동자는 반드시 미리 일의 길함을 알려주었다. 신숙주가 죽을 때가 되자 동자가 울면서 작별을 고하고 떠났으며 동자가 떠난 지 얼마 있지 않아 신숙주도 죽었다.
일찍이 고서古書를 보니 이임보에게 신동神童이 있었고 안록산安祿山에게 신병神兵이 있었다고 하던데, 신숙주의 신동도 이와 같은 부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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