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향해 던져라, 달에라도 떨어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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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그림동화

영리한 엘제 / 그림형제

돈달원 2021. 1. 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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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리한 엘제’라고 불리는 딸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딸이 다 컸을 때 아버지는 그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딸아이를 시집보낼 때가 되었소.”

 

  “맞아요. 누군가 나타나 저 애를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던 중 마침내 한스라고 하는 젊은이가 먼 곳에서 와 엘제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영리한 엘제가 이름 그대로 영리한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오, 우리 애는 길에서 바람이 이는 걸 볼 수 있고 파리가 재채기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네.”

 

  그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어머니는 엘제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지하실로 내려가 맥주 좀 가져오너라.”

 

  “예, 어머니.” 

 

  영리한 엘제는 주전자를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지하실로 가는 동안 엘제는 심심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주전자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습니다. 이윽고 지하실에 내려간 엘제는 웅크리고 앉지 않으려고 등받이 없는 의자를 맥주통 앞에다 놓고 앉았습니다. 웅크리고 앉았다가는 허리를 다치거나 그 밖의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할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엘제는 주전자를 맥주통 앞에 들이대고 꼭지를 돌렸습니다. 맥주가 주전자 속으로 쏟아지는 동안 엘제는 바쁘게 사방을 둘러보다가 이윽고 벽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얼마 동안 벽 위쪽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그녀의 머리 바로 위에 걸린 곡괭이를 발견했습니다. 석공이 무심코 거기다 곡괭이를 걸어 놓고 그냥 가 버린 모양이었습니다. 영리한 엘제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흐느껴 울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한스와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장차 그 아이가 자라 우리가 그 아이에게 지하실로 내려가 맥주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저 곡괭이는 그 아이의 머리 위에 떨어져 그 아이를 죽이고 말거야.”

 

  엘제는 앞으로 다가올 그 끔찍한 일을 생각하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층에 있던 사람들은 맥주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엘제는 돌아올 줄을 몰랐습니다. 이윽고 어머니가 하녀에게 말했습니다.

 

  “지하실로 내려가서 엘제가 뭘 하고 있나 좀 알아보렴.”

 

  지하실로 내려간 하녀는 엘제가 술통 앞에 앉아 통곡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울고 있는거니, 엘제?”

 

  하녀가 물었습니다.

 

  “내가 울지 않을 수 있어? 내가 한스와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장차 그 아이가 자라 우리가 그 아이에게 지하실로 내려가 맥주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저 곡괭이가 머리 위에 떨어져 그 아이를 죽이면 어떻게 해.” 

 

  “엘제는 정말 총명하구나!”

 

  하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 옆에 털썩 주저앉아 장차 다가올 그 끔찍한 일 때문에 목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엘제를 찾으러 간 하녀도 돌아오지 않자 위층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맥주 생각이 더 간절해졌고 참다못한 아버지가 하인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지하실로 내려가 엘제와 하녀가 뭘 하고 있나 좀 알아보도록 하게.”

 

  지하실로 내려간 하인은 엘제와 하녀가 함께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광경을 보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왜들 그렇게 울고 있는거지?”

 

  그러자 엘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울지 않을 수 있어? 내가 한스와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장차 그 아이가 자라 우리가 그 아이에게 지하실로 내려가 맥주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저 곡괭이가 머리 위에 떨어져 그 아이를 죽이면 어떻게 해.”

 

  “엘제는 정말 총명하구나!”

 

  하인도 그렇게 말하고 엘제 곁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위층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하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인도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좀 내려가서 무슨 일이 있나 알아보는 게 좋겠소.”

 

  지하실로 내려간 엘제의 어머니는 세 사람이 엉엉 울고 있는 광경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엘제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자라서 맥주를 가지러 왔을 때 곡괭이가 그 아이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게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감탄한 듯이 말했습니다.

 

  “우리 엘제 정말 총명하구나!”

 

  그러더니 그녀도 엘제 곁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아버지는 아내마저 돌아오지 않자 목이 말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한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직접 지하실로 내려가 엘제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오겠네.”

 

  지하실로 내려간 그는 앞서 내려간 네 사람이 모두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광경을 보았으며, 그 역시 엘제로부터 장차 태어날 손자가 지하실로 맥주를 가지러 내려갔다가 곡괭이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엘제 정말 똑똑하구나!”

 

  그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신랑될 사람은 혼자서 오랫동안 2층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자 그들 모두가 아래층에서 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나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내려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지하실로 내려간 그는 그들 다섯 사람이 매우 구슬프게 울고 있는 광경을 보고 물었습니다.

 

  “무슨 큰 사고가 일어났나요?”

 

  그러자 엘제가 말했습니다.

 

  “오, 한스. 우리가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장차 그 아이가 자라 우리가 그 아이더러 지하실로 내려가 맥주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저 곡괭이가 그 아이의 머리 위에 떨어져 그 아이의 머리를 갈라놓을 걸 생각해 봐요! 당신인들 울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에 한스가 대답했습니다.

 

  “내 아내될 사람으로 이보다 더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마 없을거요. 당신이 그처럼 영리하니 당신을 내 아내로 맞아들이겠소.”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가 그 자리에서 당장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엘제와 결혼해서 살기 시작한 지 얼마쯤 지난 어느 날 한스는 엘제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러 나갈거요. 내가 없는 동안 당신이 들로 나가 밀을 좀 베었으면 좋겠소. 그걸로 빵을 만들어 먹게.” 

 

  “그럴게요, 여보.”

 

  한스가 나가고 난 뒤 엘제는 죽을 끓여서 들로 나갔습니다. 들에 닿은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먼저 밀을 베는 게 좋을까, 잠을 자는 게 좋을까? 아무래도 먼저 한숨 자는 게 좋겠어.”

 

  그리하여 그녀는 밀밭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한편 한스는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얼마 동안 있었는데도 엘제가 돌아오지 않자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엘제는 정말 빈틈 없는 여자야! 너무나 부지런한 나머지 밥 먹으러 집으로 올 생각도 하지 않는군.”

 

  하지만 저녁 때가 되어도 엘제가 돌아오지 않자 한스는 엘제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들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들판의 밀밭은 손 하나 댄 흔적이 없었으며 엘제는 밀밭에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한스는 급히 집으로 돌아와 새들을 잡기 위해 사용하곤 하던 종들이 달린 그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그물을 엘제의 몸 위에 펼쳐 놓았지만 엘제는 끄떡도 하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그러자 한스는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잠그고는 의자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집 현관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그녀는 창문으로 가서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습니다.

 

  “한스, 엘제는 안에 있나요?”

 

  그러자 한스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소, 엘제는 여기 있어요.”

 

  그 말에 엘제는 잔뜩 겁에 질려 말했습니다.

 

  “오, 하느님, 이제 난 내가 아니예요.”

 

  그녀는 다른 집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다른 집사람들은 들판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종소리를 듣고 기분이 꺼림칙해 모두들 문을 열어 주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달리 찾아갈 만한 곳이 없자 엘제는 마구 달려 그 동네를 벗어났습니다. 그 뒤로는 그 누구도 엘제를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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