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 사는 서천령은 종실 사람으로 바둑 잘 두기로는 동방에서 제일이었으므로 당해 낼 자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바둑 두는 사람들이 그의 묘법을 전하며 서천령 수법이라고 일컫는다. 상번하러 온 나이 든 어떤 병졸이 하도에서부터 준마를 끌고 올라와 서천령을 뵙고 말했다.
"어르신께서 바둑을 잘 두신다고 들었는데, 저와 겨루어 봅시다. 만약 제가 이기지 못한다면 이 말을 여기에 두겠습니다."
세 번 겨뤄 두 번을 상번한 늙은 병졸이 졌다. 마침내 그 말을 내놓고 가면서 말했다. 청하옵건대 어르신께서는 이 말을 잘 먹이십시오. 천경의 기한이 만료되면 그때 다시 한 번 겨루어서 이 말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서천령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알겠소."
서천령은 스스로 준마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말보다 두 배는 정성들여 잘 먹여 길렀더니 살이 토실토실 찌게 되었다. 그 후 그 병졸이 상번 기한이 끝나자 과연 다시 찾아와 바둑 내기를 청하였는데, 이번에는 서천령이 세 번 겨뤄 세 번 다 이기지 못했다. 마침내 그 병졸은 말을 가지고 돌아가면서 말했다.
"소인은 이 말을 애지중지하였습지요. 서울에 상번하며 객지에 있는 동안 이 말을 먹여 기르기가 어려울 것을 알았으므로 잠시 어르신 댁에 맡겨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잘 길러 주 신 덕분에 병든 말이 변하여 살찌고 윤택하게 되었으니 감격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서천령이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 후 그 사람이 거처하는 마을에 인편으로 소식을 전하였더니 그 마을 사람들 또한 그가 바둑에 신묘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절묘한 기술을 가졌으면서도 어찌하여 이름을 숨기고 은둔하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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