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융경 연간(1522-1572)에 한양에 협사 김칭金偁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한미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장안의 화류장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고, 그를 한번이라도 만난 기생들은 모두 그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장안의 명기들이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이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한번도 서로 상면한 적이 없었으니 이는 풍류 간의 큰 흠이 아닐 수 없다. 남산에 있는 상산대上山臺에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놓고 각자 한 사람씩 맞이하여 술을 마시면서 실컷 즐기도록 하자."
모든 기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응낙하였다.
그날이 되자 상산대 위에 장막을 베풀어 놓고 기다림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도착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화려한 옷을 입었고 용모가 수려한 나이 젊고 이름난 장안의 협사들이었다. 그 나머지 50여 명의 기생들은 모두 주인이 없이 소나무 숲을 살펴보고만 있었다. 날이 이미 늦었는데도 연회에서는 아직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포시晡時가 지나자 어떤 한 사람이 도착하였는데 그는 이마가 드러난 베로 만든 관을 쓰고 등이 나온 갈옷을 입고 있었으며, 뒤꿈치가 드러난 짚신을 신고 천천히 오리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50여 명의 기생들이 각각 금 술잔을 들고 나아가 서로 번갈아 가며 그에게 술을 따랐다. 이에 화려한 옷을 입고 아름답게 꾸민 협사들은 서로 바라보고 저절로 기가 죽어 모두 소변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쳐 버렸다.
이로부터 장안의 협사들 중에 상산대의 잔치, 양잠두兩蠶頭의 잔치, 탕춘대蕩春臺의 잔치, 북청문北淸門의 잔치, 삼청동三淸洞의 잔치 및 삼강三江의 배 위에서 여는 잔치 등에 명기를 불러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단 김칭의 수결을 받으면 그것을 보고 온 성에 있는 기생들이 모두 세찬 파도가 이는 듯 달려오므로 비록 사인이 관장하는 장악원과 예조의 위엄과 세력이라 해도 감히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김칭이 장차 죽으려고 할 때 많은 협사들이 그 술수를 전수해 달라고 청하자, 김칭은 좌우를 물리치고 비밀스럽게 말했다.
"노비처럼 구시오."
이 말을 마치더니 그는 죽었다.
아아! 어찌 협사만 그러한 술수를 쓰겠는가? 명사名士들 또한 그 같은 술수를 행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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