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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 정백창鄭百昌이 약관의 나이에 산사에서 책을 읽었는데 중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싫어하여 항상 불탑佛榻 뒤로 가서 밤에 책을 읽었다. 불탑 뒤에는 창도 없는 빈 굴이 있었는데 그곳에 불가佛家의 의물儀物을 넣어 두고 있었다. 밤이 깊자 한 거대한 물체가 갑작스럽게 나타나 서안書案 앞에 엎드렸는데 악취가 비위를 거슬렸다. 정백창이 자세히 보니, 그 물체는 눈은 튀어나오고 코는 찌그러졌으며 입 꼬리는 귀까지 닿았고 귀는 늘어지고 머리카락은 솟았으며 마치 양 날개가 활짝 펴진 것 같았고 몸은 청홍색이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정백창은 그것이 요망한 귀신인 것을 알고 놀라는 기색 없이 계속 책을 읽었다. 인하여 다리를 벌렸다 뻗었다 반복하면서 여전히 태연자약하니 그 물체도 오랫동안 나아오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정백창이 드디어 이웃 방에 있는 중을 부르니, 밤이 깊어 모두 잠들었다가 서너 명의 중이 바야흐로 응대하자 그 물체는 도로 불탑 구멍으로 들어갔다. 정백창은 일어나 중들 방으로 들어가 술을 구한 뒤 큰 그릇으로 한 잔을 들이켜서 정신을 안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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