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역설적이라 할 것은, 아이가 만약 스스로 손가락을 자른다면 이것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표창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 혹은 형을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 아이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세종 21년 4월 3일, 세종은 두 아이에게 정려문을 내리고 복호(復戶)하게 했다. 이 아이들은 평안도 가산군의 금원진, 그리고 같은 마을의 김귀시라는 아이들로, 자신의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저마다 스스로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여 치료했다. 이 아이들은 모두 9살이었다. 또한 중종 37년 3월 10일에는 강철이라는 13살의 어린아이가 병에 걸린 형에게 손가락을 잘라 태워 먹여 병이 나은 일이 있었다.
사노비 건금은 어머니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피와 손가락뼈를 태워 가루 낸 것을 술에 섞여 먹였다.
뿐만 아니라 정조 14년 1월 27일에는 회인에 사는 박팽령, 우호득, 이육섭이라는 아이들이 부모가 병이 나자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먹였다. 이에 부모가 곧장 완쾌했다는 소식이 보고되었고, 이를 치하하여 정조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넉넉하게 내렸다.
얼마나 효성이 지극했으면 스스로 칼을 들어 손가락이나 다리 살을 베었을까. 그런데다가 기적적으로 병이 낫기까지 했으니 이야말로 하늘이 감동하고 땅이 눈물지을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라는 이런 이들을 효자, 효녀로 표창을 하고 상을 내리며, 사람들이 칭송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몸소 칼을 들어 효도를 실천한 아들과 딸들도 그렇게까지 행복했을까.
유교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효(孝)였다. 조선 시대에는 효자와 효녀, 그리고 충신과 열녀 이야기를 수집해서 책으로 만들어 사방에 보급했다. 요즘의 미담처럼 이런 이야기를 많이 읽고 알게 하고, 그럼으로써 백성들의 인간성이나 생활 태도들이 더 좋게 교화한다는 뜻에서였다. 글자 못 읽는 백성들을 위해 그림책까지 만들어서 보급할 정도였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한겨울에 죽순을 구했다든지, 얼음물에서 잉어를 잡아 올렸다든지 하는 효자 이야기가 바로 그런 예이다. 그런데 이런 효자 효녀 이야기가 언제나 감동적이거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개중에는 현대인의 감성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이것이 과연 효성스러운 이야기가 맞나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효녀 사월의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이 이야기는 어느 책에 실려 있느냐에 따라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세종실록에서 수록되어 있는 게 가장 오래된 것 같다. 여기에 따르면, 사월이는 평안도 곽산에 사는 김마언의 딸로 나이는 19살이었는데, 어머니가 미친 병에 걸리게 되자 아버지가 어머니를 내쳤다. 그러자 사월은 어머니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고, 이때 산 사람의 뼈가 좋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월이는 곧 자기 왼손의 넷째 손가락을 잘라 가루로 내어, 국에 타서 어머니에게 먹였다. 그러자 어머니의 병이 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월의 집은 대대로 부역을 면제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김마언은 병이 나은 아내를 다시 받아줬을까.
만약 아이가 손가락을 잘라 정려문(旌閭門)을 받는다면, 부모와 형제들은 세금 및 요역에서 많은 혜택을 얻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세금의 부담은 무겁고 힘들었다. 그 무거운 짐이 아이의 손가락 하나로 해결된다면, 내 아이의 손을 잡아 작두 밑에 가져가는 것도 아주 못할 짓이 아니다. 정말 부모를 위한 마음으로 손가락을 자른 아이들도 있겠지만, 이것은 세상이 주입시켰던 효도라는 이상의 일그러진 결과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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