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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어우야담

어우야담 / (50) 시인의 곤궁함

돈달원 2020. 12. 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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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릇 만물을 새기고 치장하여 만물에게 각각의 형체를 부여하는 것은 하늘의 재주이며, 만물의 조화造化를 열어 헤쳐 희롱하며 만물의 형태를 모방하여 형상해 내는 것은 시인의 재주이다. 오직 하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시인은 어찌된 물건이기에 하늘이 만드는 것까지 빼앗는 것인가? 재능 있는 자들이 좋지 않은 운명을 가진 것은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으니, 하늘도 또한 시기심이 많은 것인가? 이미 재주를 부여해 주고 어째서 그들을 곤궁하게 하는 것인가!

 

  나의 벗인 성여학成汝學은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나 같은 시대에 그와 더불어 견줄 자가 드문데도 지금 60여 세가 되도록 아직까지 한번도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으니, 내가 항상 이를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그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이슬 맺힌 풀에 곤충의 소리 젖어들고,

  바람 부는 가지에 새의 잠은 위태롭네.

 

  또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내 얼굴을 오직 벗만이 알아보고,

  먹는 것은 장부의 슬픔이 되네.

 

  또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비 내릴 기색은 유독 꿈을 엄습하고,

  가을빛은 시를 물들이고자 하네.

 

  그의 말이 비록 위와 같이 지극히 공교로우나 그 차갑고 담담하고 쓸쓸한 것은 전혀 영화롭고 귀한 사람의 기상이 아니다. 어찌 유독 시만이 그를 곤궁하게 했겠는가! 시도 또한 그의 곤궁함에 울고 있다.

 

  또 이정면李廷冕은 이홍남李洪男의 손자인데, 어려서부터 키가 작고 얼굴에는 상처가 있었다. 이 때문에 자신의 호를 단사라고 했다. 일찍이 비 온 뒤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뜰의 음지에 키 작은 지렁이 기어가고,

  햇볕 쪼인 벽에 추운 파리 모여들도다.

 

  이정면의 친구 이춘영李春英은 문인文人이었는데, 항상 이정면 시가 공교롭다고 칭찬하면서도 그 시가 지닌 곤궁함은 싫어하였다. 이정면은 후에 과거에 합격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으니, 위의 시에서 뜰 음지의 키 작은 지렁이는 천한 것의 표시요, 햇볕 쪼인 벽의 추운 파리는 요절할 기미였다.

 

  내가 수찬 윤결을 시인 윤효원尹孝源 집에서 계속 만나 술을 마시면서 즉석에서 시를 지었는데, 윤결이 1연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천리 떠도는 벼슬살이 사탕 단맛 다하고,

  세상일은 한 봄의 꿈이니 꽃잎 지기 바쁘도다.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그 시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였는데, 나는 나이 어린 사람이 어찌 이 같은 글을 지을 수 있는가." 라고 말하였다. 과연 얼마 있지 않아 윤결은 요절하였다. 아! 시는 성정性情에서 나오니 텅 비어 영활한 마음이 요절하고 비천하게 될 것을 먼저 알아 함축적으로 나타내므로 기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스스로를 곤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가 스스로 기약한 것같이 하는 것이다. 다만 재주 있는 자는 하늘 또한 시기하니 하물며 세상 사람들은 또 얼마나 더 시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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