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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어우야담

어우야담 / (56) 문장의 결점 지적을 수용하는 여부

돈달원 2020. 12. 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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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을 짓는 선비들 중에, 혹자는 누군가 그의 글의 잘못된 점을 말해 주면 기뻐하고 충고를 즐겨 들으며 고치는 것을 물 흐르듯 하지만, 또 혹자는 발끈 성을 내며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일부러 고치지 않기도 한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은 자신의 문장이 어떤 사람보다도 못하지 않다고 자부하였다. 그가 지제교로서 임금님 명령에 응해 시문을 지어 바치자 승정원 승지가 그 시문의 잘못된 곳을 지적하여 표를 붙여 놓았다. 기대승은 이에 노하여 심부름하는 아전을 꾸짖고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

 

  유근이 도승지가 되었을 때 이호민이 임금님 명령에 따라 시문을 지어 바쳤다. 유근이 여러 곳에 표를 붙여 고칠 것을 이호민에게 청하니 이호민은 어떤 곳은 고치고 어떤 곳은 고치지 않았다. 이에 유근이 다시 아전을 보내어 이호민에게 고치기를 재삼 청하였고, 또 합欱 자에 표를 붙여 이 자가 무슨 자인지를 물었다. 이호민은 이를 보고 냉소하며 말하였다.

 

  “유근은 우리나라 시문만 읽고 중국의 문선文選은 읽지 않았단 말인가?”

 

  곧 붓을 들어 설명하여 말하였다.

 

  “문선부文選賦에 ‘들을 들이마시고 산을 내뿜어 예국의 호읍 邑을 들이마신다(欱野噴山欱禮國䧚)’라 하였으니 합欱은 흡吸의 고자古字입니다.”

 

  또 유근이 아전을 보내어 문장에 표해 놓은 곳을 모두 고치기를 청하니 이호민은 드디어 성을 내어 유근을 질책하였고 유근은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이로부터 비록 신진관료의 보잘것없는 글이라도 감히 고치라고 청하지 못하였으니, 그 이유는 이들도 역시 성을 내었기 때문이다. 유근과 재상 심희수가 홍문관 대제학이 되었을 때 그들 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은 그때마다 성난 빛을 얼굴에 드러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지는 못했다.

 

  정사룡은 시를 지으면 대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사람들이 혹 잘못된 점을 말하면 그때마다 흔연히 마음을 비우고 충고를 받아들여 고쳤는데 물 흐르듯이 유연하였다. 또 그가 지은 바를 이퇴계에게 많이 보여 주었는데 퇴계가 혹 문장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정사룡은 그 즉석에서 붓을 들어 고쳐 곤란해 하는 기색이 없었다. 퇴계 역시 정사룡이 그의 충고를 어기지 않는 것을 가상히 여겼다. 일찍이 정시198에서 퇴계가 왕각배율 운(王閣排律二十韻)을 지어 정서한 뒤 호음 정사룡에게 그가 지은 율시를 보여 달라고 청하였다. 호음이 이미 초고한 율시를 보여 주니 퇴계가 이를 읽었는데, 

 

  해 지는 처마 텅 비어 새벽 전에 흰빛 나고,

  바람 통하는 집의 발 아직 서늘한 가을은 아니네.

 

  라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퇴계가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고 칭찬하였다.

 

  "금일의 시험에서 당신 아니면 누가 장원을 하겠소."

 

  퇴계는 자신의 시를 소매에 감춘 채 끝내 내놓지 않았으며 또한 시권을 제출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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