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당나라 황실의 공주가 병이 나서 고종이 삼장에게 구해 주기를 요청했다. 삼장은 자기 대신 혜통을 천거했다. 혜통이 명을 받고 따로 머물면서 흰 콩 한 말을 은그릇 속에 넣고 주문을 외우자, 흰 콩이 흰 갑옷을 입은 귀신 군사로 변했다. 그 군사로 마귀를 쫓아내려 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다시 검은 콩 한 말을 금그릇 속에 넣고 주문을 외우자 검은 갑옷을 입은 귀신 군대로 변했다. 두 색깔의 구신 군대가 힘을 합쳐 마귀를 쫓아내자 갑자기 교룡이 뛰쳐나가고 마침내 공주의 병이 낫게 되었다.
교룡은 혜통이 자신을 쫓아낸 것을 원망하여 신라의 문잉림(文仍林)으로 가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해쳤다. 이때 정공(鄭恭)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혜통을 만나 말했다.
"스님이 내쫓은 독룡(毒龍)이 본국에 와서 심한 피해를 끼치니, 빨리 없애도록 하시오."
혜통은 정공과 함께 인덕(麟德) 2년 을축년(665년)에 본국으로 돌아와 독룡을 쫓아냈다. 그러자 독룡은 이번에는 정공을 원망하면서 버드나무에 기대어 정공의 집 문밖에 살았는데, 정공은 그 사실을 모르고 나무가 무성한 것을 감상하면서 무척 아꼈다.
신문왕이 죽고 효소왕(孝昭王)이 자리에 올라 임금의 무덤을 고쳐 짓고 장사 지낼 길을 만드는데, 정공의 집 버드나무가 길을 막고 있자 관리가 베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자 정공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차라리 내 머리를 벨지언정 이 나무는 베지 못한다."
관리가 왕에게 아뢰니, 왕이 매우 화가 나서 법관에게 명령했다.
"정공이 왕 화상의 신술(神術)을 믿고 임금의 명을 거스르며 제 머리를 베라고 했으니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래서 정공을 죽이고 그 집을 묻어 버렸다.
조정에서 이렇게 의논했다.
"왕 화상은 정공과 상당히 친밀했으므로 반드시 정공의 죽음을 의심할 것입니다. 그를 먼저 없애야 합니다."
왕은 군사를 풀어 왕 화상을 잡아들이도록 했다.
혜통은 왕망사(王望寺)에 있다가 군사가 오는 것을 보고는 지붕으로 올라가 주사(朱砂)가 든 병을 가지고 붉은 먹으 붓에 묻히고 외쳤다.
"내가 하는 것을 보아라."
그러고는 병목에다 한 획을 그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각자의 목을 보아라."
그들이 자신의 목을 보니 모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어 서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혜통이 또 말했다.
"만약 내가 병목을 자르면 너희들의 목도 당연히 잘릴 것이니, 어떻게 하겠느냐?"
군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 군사들이 목에 붉은 줄이 그어진 채로 왕에게 달려가니, 왕이 말했다.
"승려의 신통력을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막겠느냐?"
왕은 혜통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왕의 딸에게 갑자기 병이 생겨 왕이 혜통에게 고치라고 명하니 곧 나았다. 왕이 몹시 기뻐하자 혜통이 말했다.
"정공은 독룡의 더럽힘을 받아 애매하게 나라의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후회하는 마음이 생겨 정공의 처자식을 방면해 주고, 혜통을 국사(國師)로 삼았다.
독룡은 정공에게 원수를 갚고 난 후 기장산(機張山)으로 가 웅신(熊神)이 되었는데, 악독함이 극삼하여 백성들이 몹시 괴로워했다. 혜통이 산속에 가서 독룡을 타일러 불살계(不殺戒)를 주니, 웅신의 해로움이 바로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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