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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어우야담

어우야담 / (334) 굶주린 도적

돈달원 2021. 3. 1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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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에 서울의 어떤 선비가 서울 저자의 쌀값이 올랐기 때문에 수백 리 밖에 나가 쌀을 한 짐 사서 싣고 왔다. 산길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람이 장검을 들고 말 앞에 나와 절을 올렸다. 선비가 말했다.

 

  "너는 누구냐?"

 

  "길 가는 사람입니다."

 

  "길 가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절을 하는 것인고?"

 

  "저희들은 굶주렸으며 먹을 것이 없으므로 쌀을 얻어 가기 원하옵니다."

 

  선비가 미처 응대하지 못하자 하인이 말했다.

 

  "반 짐만 나누어 주겠소."

 

  "식구가 많아 반 짐으로는 두루 먹일 수 없습니다. 한 짐 다 주십시오."

 

  선비는 머리를 끄덕인 뒤 다 주었는데 그 사람이 또 말했다.

 

  "쌀이 무거워 지고 갈 수 없으니 말도 함께 빌려 주신다면 쓰고서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산 하나를 지나자 말을 되돌려 주면서 말했다.

 

  "쌀을 베풀어 주신 것 진실로 고맙습니다. 청하옵건대 제가 호송하도록 해 주십시오."

 

  몇 리를 가서 골짜기 밑에 이르자 그곳에 또 몽둥이와 병기를 든 사람들이 있다가 길을 가로막으니 선비를 호송하던 사람이 말했다.  

 

  "선비 나으리께서 우리에게 쌀 한 짐을 베푸셨으므로 장군께서 나더러 이분의 행차를 호송하라 하셨소."

 

  결국 선비는 아무런 탈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대개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빈곤하자 양민들이 서로 모여 도적이 되었던 까닭에 사람은 해치지 않고 재물만 취했던 것이다. 그 후에 어떤 행상行商이 길에서 도적을 만났는데 도적이 행상에게 도리어 쫓김을 당했으니, 행상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도적은 굶주려 있었으므로 배고파 길에 고꾸라지자 행상이 승세를 타 도적을 몰았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도적의 무리들이 점점 흩어지게 되었으니 이 또한 가엾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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