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靈光에 큰 못이 있는데 큰 벌판까지 뻗쳐 있어 둘레가 몇 리나 되는지 깊이가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해마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할 때면 큰 비가 내려 바다와 통했으므로 바다 물고기들이 못에서 헤엄치고 다녔다. 물이 빠지게 되면 그로 인해 못 안에서 기르는 물고기가 되어 버리므로 영광군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던져 바닷고기들을 많이 잡아 올 수 있었다.
태수 김외천金畏天은 무인이다. 그 못에서 물고기를 대대적으로 잡아 기이한 장관을 연출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고기를 잡는데, 쓴맛 나는 나무 열매를 상류에서 부수어 뿌리면 물고기들이 모두 물에 떠 죽어 그물로 다 걷어 낼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태수는 영광군 안에 명령을 내려 백성들 중 관아에 송사하러 온 사람들은 모두 그 열매를 따 바치게끔 하였으니, 여러 달이 지나자 열매가 많아져서 1백여 가마니나 되었다. 이에 꽃피는 좋은 계절이 되자 못가에 장막을 치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었다. 고기 잡는 사람을 모아놓고 물놀이를 펼쳤고 쌓아 놓은 쓴 열매를 상류에서 부수어 뿌리게 하니 식자들이 모두 말하였다.
"하늘이 주신 생물을 함부로 살상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합니다. 원하옵건대 태수께서는 그물을 사용하여 잡아먹는 것에 만족하십시오. 물고기를 사그리 잡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으십니다."
태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쓴 열매의 즙을 대대적으로 퍼뜨리니 물을 따라 흘러내려 못 물의 색이 변했다. 잠시 후 어린 물고기들이 맨 처음 뜨더니 알도 떠올랐는데 작은 것은 손가락만 했고 큰 것은 손바닥만 하였다. 한 자 만한 크기, 한 길 크기, 수레만 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서로 뒤를 이어 물 위에 떠올랐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고 눈들이 휘둥그레졌다. 최후로 물고기 한 마리가 떠올랐는데 크기는 사람만 하며 마치 벌거벗은 여자 같았다. 피부는 눈처럼 희었고 머리털은 풀어 헤쳐진 채물 위에 떠올라 그 큰 연못이 완전히 씨가 마르게 되었다. 이로부터 바람과 구름이 일고 번개가 치며 비가 내려 온 연못이 깜깜해지더니 수십일 동안 계속 개이지 않았다. 태수는 그해에 죽었다.
근세에 유조인柳祖訒이라는 자는 살생을 하지 않았다. 상국 노수신을 따라 한강을 유람하며 물고기를 구경했는데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잡아 한 동이를 가득 채우자 유조인이 그 동이를 들어 강에 부어 버리니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얼굴빛이 변하였다.
일찍이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살아 있는 곤충을 밟았다. 유조인은 말에서 내려 말을 끌던 종에게 한 그릇의 물을 벌로 마시게 하였다.
그가 순천 군수가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살아 있는 대합조개를 바치니 조인은 그것을 차마 먹지 못하고 강물에 방생하였는데, 대합조개는 바다에서 나는 생물이고 강에서 바다까지의 거리가 수백 리였으므로 순천군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후에 조인은 익위사翊衛司 사어司禦로서 세자의 행차를 배행하였다. 대천大川을 지날 때 문학文學 남이공南以恭이 뛰어노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노는 물고기 즐길 만하니 그물 던지기 진실로 좋네."
조인이 말하였다.
"노는 물고기 즐길 만하다는 것은 그 뜻이 좋으나, 그물 던지기 진실로 좋네는 그 말이 어찌 그리도 인자하지 못하오? 노는 물고기를 그물을 던져 잡으면 물가에서 그 광경을 보는 자들이야 손가락질하며 기뻐 날뛰겠지만, 물속에서는 삼족이 죽는 슬픔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그의 말은 불교적 선禪에 가까우나 그의 마음은 군자답다. 산곡 황정견의 시에서는,
'갖옷이 비록 따뜻하나 여우와 오소리는 진실로 서로 슬퍼하네.'
라고 했고,
소동파의 시에서는,
'소 잡고 양 잡으며물고기와 자라 살 바르고 저미니 먹는 자들이야 매우 좋겠지만 죽은 자들은 몹시 괴롭도다.'
라고 하였다.
영광 태수와 같은 자는 실로 유조인에게는 죄인이다. 그러나 조인의 호생好生함이 이와 같은데도 그의 아들은 비명에 갑자기 죽었으니 하늘의 도는 헤아릴 수가 없다. (김외천이 영광군에서 죽으니 운구를 영남嶺南 고향으로 모시고 돌아가는데 중도에서 비바람을 만나 깜깜해지는 바람에 행로를 분변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운구가 가벼웠으므로 그의 아버지가 의아해하며 운구를 열어 보니 시체가 없었다.)
'이야기보따리 - 책 > 어우야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우야담 3 / (22) 노비 김의동의 출세 (0) | 2021.10.27 |
---|---|
어우야담 / (338) 흥양읍의 아기장수 (0) | 2021.03.17 |
어우야담 / (334) 굶주린 도적 (0) | 2021.03.16 |
어우야담 / (327) 저승 손님 (0) | 2021.03.15 |
어우야담 / (320) 역적 허균의 기재 (0) | 2021.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