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임인년(1542, 중종 37)에 서울에 홍수가 나 대궐 냇물이 불어나자 홍문관 유신들은 목욕탕의 욕조를 타고 출입하며 숙직했다고 한다. 외숙고부外叔姑夫인 동지同知 이조李調에게 들었다.
만력 임인년(1602, 선조 5)에는, 내가 전한典翰으로 대궐에 들어가 숙직할 때였는데 큰 비를 만났다. 이때 대궐 안의 내와 도랑의 물이 넘쳐 들어와 홍문관의 서책이 물에 젖고 흩어져 없어지는 판국이었으므로 교대로 숙직을 들던 사람들이 책을 모두 머리에 얹거나 등에 짊어지고 출입하였다.
정덕正德 경진년(1520, 중종 15)에도 홍수가 져서 삼강三江이 넘쳐흘렀는데 백 년 동안에 홍수로 인해 이같이 큰 상흔이 남았던 적은 없었다.
만력 경진년(1580, 선조 13)에 나는 서호西湖에 살고 있었는데 큰 홍수가 갑자기 닥쳤다. 연로한 노인들이 “이번 장마는 한 길이나 되는 큰물이 닥쳤던 정덕 경진년의 참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근래에는 없었던 장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율도栗島에 살고 있던 백성들은 모두 뽕나무 위에 올라가 피신하였는데 뽕나무가 물에 반쯤 잠기자 울부짖다가 기진맥진하였다. 내가 이웃 사람들에게 그들을 구해 줄 것을 권유하였으나 사람들은 놀라고 두려워한 나머지 감히 배를 출발시키지 못하는지라 내가 친히 배를 밀어 보내어 그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게 하였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뽕나무 위에 있던 사람들이 거꾸로 배 가운데 떨어져 배를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수재秀才가 착한 일을 하였으니 마땅히 음덕이 있어서 금년에는 반드시 아들을 낳을 것이오.”라고 하였는데 이해에 약瀹을 낳았다. 대개 홍수와 가뭄이 생기는 것 또한 간지干支에 응당 하는 계산에 따르지만, 쇠양지설衰穰之說(인간의 덕에 따라 가뭄과 홍수가 온다는 설)도 헛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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