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광대놀이를 설치한 것은 미관을 위함이 아니라 세교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데 있었으니 우맹과 우전이 그 예이다.
명종께서 대비전을 위해 진풍정을 대궐 안에서 베풀었을 때 서울의 광대 귀석貴石이 좋은 광대놀이를 진상하였다. 그는 풀을 묶어 꾸러미 네 개를 만들었는데 큰 것 둘, 중간 것 하나, 작은 것 하나였다. 그는 자칭 수령이라고 하면서 동헌東軒에 앉더니 진봉색리를 불렀다. 한 광대가 자칭 진봉색리라고 하면서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왔다. 귀석이 목소리를 낮추더니 큰 꾸러미 한 개를 들어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이조판서에게 드려라.”
또 큰 꾸러미 하나를 들어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병조판서에게 드려라.”
중간 크기의 꾸러미를 들어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대사헌에게 드려라.”
그런 후에 작은 꾸러미를 들어 그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은 임금님께 진상하여라.”
귀석은 종실의 노비이다. 그 주인이 시예에 참여하여 승자하였는데도 실직을 가지지 못하고, 봉록도 더 받지 못하였으며, 추졸도 갖추지 못하였는데다 각 능전陵殿에 차출되어 거의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귀석이 진풍정에 들어갈 때 여러 광대들과 더불어 약속하여 한 사람은 시예종실試藝宗室이라 칭한 뒤 삐쩍 마른 말을 탔고, 귀석은 그의 노비가 되어 스스로 말고삐를 잡고 들어갔으며, 다른 한 사람은 재상으로 분장하여 준마를 타고 들어갔는데 말고삐를 잡은 자들이 옹위하고 갔다. 앞장 선 졸개가 벽제하는데도 종실이 범필하자 귀석을 잡아다가 매를 치니 귀석이 큰 소리로 하소연하였다.
“소인의 주인은 시예종실입니다. 관의 높음으론 영공보다 아래에 있지 않지만 봉록이 더해지지 않고 추졸도 갖추어 있지 않은데다 각 능과 각 전의 제사에 차출되어 쉬는 날이 거의 없으니 도리어 시예로 자품이 오르기 전보다도 못하옵니다. 소인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재상 역의 광대가 놀라 탄식하며 그를 풀어 주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특명으로 귀석의 주인에게 실직을 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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