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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봉의 집은 영경전 앞에 있다. 손님 맞이에 잡으려고 큰 소 한 마리를 사 놓고 백정이 아직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노비 수손이 과천에서 땔나무를 싣고 와 소를 말뚝에 매에 놨는데 소위 등이 가로질러 놓은 나무에 찔려 척추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잡으려고 사 놓은 소와 크기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소를 저 소와 바꾸라고 명하였으니, 땔나무를 싣고 온 소가 마침내 소반 음식으로 들어갔고 도살하려 했던 소는 살아 과천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수탉이 있었다. 그중 검은 놈이 암탉을 깔고 닭장을 전횡하여 늘 붉은 수탉을 쫓아내니 붉은 수탉은 닭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웃집에 의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인에게 그 붉은 수탉을 잡으라 하였는데 잘못 알아듣고는 검은 수탉을 쏘아 죽였다. 그래서 집에 있던 놈은 소반 음식으로 충당되었고 이웃으로 도망가 있던 놈은 돌아와 뭇 암탉을 전횡하게 되었다.
미물이 죽고 사는 것 또한 그 타고난 운수가 있어 잡으려고 하는 자의 마음대로 되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 있을까. 살고 죽는 것을 근심하여 온갖 계책을 영위하는 사람은 과연 하늘 이치를 아는 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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