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 연간에 관인 최운우라는 자가 강릉에 살았는데 늦봄에 꽃과 버들이 아름답고 바람과 볕이 화창했으므로 온 집안 사람들이 양양의 우암도에서 놀았다. 장막을 펼치고 술잔과 음식 그릇을 나열하고 생황과 노래를 함께 연주하였다. 술기운이 약간 오르자 그 흥취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바다에 배를 띄우고 섬 아래를 빙 돌았다. 섬은 기암괴석들이 뒤섞여 맞서 있었고 낚싯줄은 바람에 날리는데 금빛 모래, 은빛 자갈이 천 길의 밑바닥까지 맑게 들여다보여 즐거웠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홀연 일진광풍이 물밑부터 솟아 일어나 무섭게 밀려오는 큰 물결이 하늘까지 닿고 돛대와 노가 기우니 배 가득 탔던 사람들이 모두 풍이굴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최씨의 한 아들만이 홀로 섬 위에 남아 있었으니 기운이 편치 않아 함께 배를 타지 않았던 것이었다. 부모 형제 누이와 매형이 모두 물밑으로 빠지는 것을 그는 섬 위에서 멀리 바라보며 가슴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하의를 걷어붙이고 바다에 뛰어들려 하자 선비인 어떤 한 객이 만류하면서 말했다.
"수영을 배운 적이 없으니 죽기 밖에 무슨 이익이 있겠소. 내 마땅히 구원해 주리다."
마침내 옷을 벗더니 바다에 뛰어들어 부친을 붙잡아 꺼내고 모친을 이끌어내고 또 그 형과 아우를 구해 내 한참 후에 모두 살려낼 수 있었다. 최후로 누이와 매제를 찾아보았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이로부터 최생은 그 객을 마치 천지 부모처럼 대했는데, 오직 매제 집에서만은 아직 모습이 남아 있던 위급하고 어려운 때 우선 빨리 구해 주지 않았다고 여기며 원망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들이 그르다고 여기면서 말하였다.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이라면 하늘에 맡기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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