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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보따리 - 책/어우야담

어우야담 3 / (153) 정인지의 거절

돈달원 2021. 12. 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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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부원군 정인지는 어릴 적에 엄친을 여의고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글재주가 탁월하였고 용모는 옥 같았다. 늘 외사에 거처하면서 밤늦도록 책을 읽었다. 담장을 사이에 둔 집에는 처자가 있었는데 용모가 뛰어나게 아름다웠고, 그 집안은 대대로 이어온 명문거족이었다. 그 처자가 틈을 통해 미소년이 낭랑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책 읽는 것을 엿보고는 마음속으로 사모하여 밤에 담장을 넘어와 가까이 다가오고자 하는 것이었다. 정인지가 정색을 하고 거절하는데 처자가 소리를 질러 드러내려 하자 그는 거절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따뜻한 말로 달래었다.

  "그대는 양반 집안 딸이며 나도 아직 장가들지 않았소. 집이 가난하고 모친께서 홀로 계시므로 중매를 놓아도 응하는 자가 없었으니 비록 장가든다 하여도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얻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오. 내 만약 어머님께 알려 의논하면 어머님께서도 틀림없이 기뻐하며 허락하실 것이오. 그런 후에 백년 누릴 기쁨을 도모하는 것이 옳을 것 같소. 지금 만약 한번 정욕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대는 믿음을 잃은 아녀자가 될 것이니 내 마음에도 또한 유퀘하지 않을 것이요, 그대가 만약 다른 곳으로 시집간다해도 평생의 한이 되고 말 것이오. 그러니 잠시 참고서 내일 모친께 알려 두 집안이 혼사를 이루도록 합시다."

  처자가 몹시 기뻐하며 약속을 하고 갔다.

  정인지는 다음 날 모친에게 알리고 다른 집으로 옮겨가 그 집은 끝내 팔고 발을 끊었으며, 처자는 상심한 마음을 품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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