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서생이 산사에 들어가 공부하였는데 세월이 쌓이니 절의 중과 서로 가깝게 되었다. 중은 매일 아침 사발밥과 향로로 부처에게 봉양한 뒤 겸하여 승지부인의 영혼도 청하는 것이었다. 서생이 그 연고를 물었으나 중은 대답하지 않았다. 훗날 또 이전처럼 영혼 청하는 소리를 듣고 다시 물으니 중은 서생과 이미 친밀한 사이가 되었으므로 그 연유를 다 말해 주었다.
"애초부터 모 승지와는 서로 아는 사이였지요. 그를 뵙고자 하여 찾아갔는데 승지는 마침 그날 의금부의 당직이어서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날이 저물어 문밖 곁방에서 묵게 되었지요. 때는 여름 달이 대낮처럼 밝았는데,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지요. 협문이 모두 닫혀 있지 않은 채 여러 계집종들이 서로 뒤엉켜 잠자고 있었고, 침상 위에는 어떤 한 부인이 몸을 드러내고 누워 있는데 옥빛 살결이 먹음직하였습죠. 그래서 잠자고 있는 틈을 타 그녀를 범하고는 문밖으로 나와 처음처럼 누워 있는데, 곧이어 안에서 계집종을 불러 목욕물을 들이라고 명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날이 밝기 전에 달아났다가 날이 밝은 후 그 집 문 앞을 지나니 온 집안 사람들이 곡하며 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웃 사람에게 들으니 그 집 부인이 어젯밤 목을 매 자결했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는 영문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늘 절부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을 때까지 그녀를 배향하려 하는 것일 뿐입니다."
서생이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견딜 수 없어 당장 목을 부러뜨려 죽이고 싶었지만 힘이 약했으므로 도리어 해를 당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함께 나가 놀자고 중을 꾀어내 높은 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기이한 봉우리군요. 구경할 만하겠소. 나와 같이 올라가 조망합시다."
중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천길 낭떠러지 아래가 몹시 험하여 사람의 발이 이르지 못할 곳이었다. 서생이 중에게 농담하였다.
"나와 당신 중 누가 더 클까."
중이 웃으며 말하였다.
"수재께서 어디 저와 견주십니까."
서생이 재 보자고 청하였다. 중이 등을 대고 재는데 서생이 마침내 팔뚝을 걷어붙이고 절벽으로 밀어 버리니 중은 천길 아래의 낭떠러지로 거꾸로 떨어져 죽었다.
군자가 말한다.
"서생이 중을 죽인 것이 통쾌하기는 통쾌하나, 그 죄를 성토하여 올바른 법으로 죽이지 못한 것이 애석하도다!"
유생의 이름은 강자신이다. 훗날 파주목사가 되었으며 석덕의 조카이다. 부인의 성씨는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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