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향해 던져라, 달에라도 떨어질테니
블로그 애서(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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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 75

어우야담 / 62) 신막정 집 귀신

경성 남부 소공주동小公主洞에 신막정申莫定의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항상 주인이 살지 않고 남에게 빌려주어 살게 하였다. 그 까닭을 알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처음에 주인이 새로 그 집을 사서 살았는데 그 집에는 귀신이 있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귀신의 언어는 보통 사람과 같았으나 형체만은 드러내지 않았다. 집 주인을 주인님이라 부르며 노예같이 주인을 섬기면서 요청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데 항상 불시에 먹을 것을 구했는데 만약 주지 않으면 그때마다 성을 내고 괴상한 짓을 하였다. 일찍이 밤에 주인 부부가 함께 침상에 누워 잠을 자는데, 귀신이 침상 아래 누워 웃으니 주인 부부가 이를 괴롭게 여겨 다른 곳으로 피하려고 계획하였다. 귀신도 역시 따라가기를 청하..

어우야담 / (61) 태의 양예수의 신술

양예수는 선조 때의 태의(의약의 일을 맡은 벼슬)이다. 어렸을 적에 호음 정사룡을 숙직실에서 알현하였는데 그때 호음이 양절반씨역대론陽節潘氏歷代論을 읽고 있었다. 호음이 양예수에게 말했다. "너도 배우는 데 뜻이 있느냐?" 그리고는 자신이 읽고 있던 논論을 가르쳐 준 뒤 책을 치우고 논의 내용을 외우도록 시키자 양예수는 거침없이 외워 편을 끝마칠 때까지 틀리는 곳이 없었다. 호음이 크게 놀라 말했다. "너 같은 재주로 문장을 배운다면 내 마땅히 의발을 전해 주겠다." 양예수는 보잘것없는 가문의 출신이어 녹사에 다급했던 나머지 마침내는 의과醫科에 응시해 명의가 되었다. 그는 패술을 사용하여 온갖 병을 치료하였는데 그 신속한 효과는 마치 신이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여자가 "출산 후 마음의 병이 발생하여 미친..

어우야담 / (58) 문장가 왕세정

명나라 사람 왕세정은 일생 동안 문장을 연구하였다. 집에 다섯 개의 방이 있었는데 가운데 방은 아내가 거처하고 나머지 네 방에는 첩 한 사람씩이 각각 거처했다. 가운데 한 방에는 유가儒家의 책을 비치해 두고 유객儒客이 오면 그 방에서 만나 유학에 대해 토론했고 그 방에 거처하는 첩이 유가의 음식을 마련해 손님을 접대했다. 또 한 방에는 불가佛家의 서적을 비치해 놓고 불교에 정통한 중이나 불도가 오면 그 방에서 만났으며 그 방에 거처하는 첩이 불가의 음식을 마련해 손님을 접대하였다. 또 다른 한 방에는 시가詩家의 서적을 비치해 놓고 시를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오면 그 방에서 만나보고 시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그 방에 기거하는 첩 또한 시가의 음식을 마련하여 손님을 대접하였다. 나머지 한 방에는 선가仙家의 서적..

어우야담 / (56) 문장의 결점 지적을 수용하는 여부

문장을 짓는 선비들 중에, 혹자는 누군가 그의 글의 잘못된 점을 말해 주면 기뻐하고 충고를 즐겨 들으며 고치는 것을 물 흐르듯 하지만, 또 혹자는 발끈 성을 내며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일부러 고치지 않기도 한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은 자신의 문장이 어떤 사람보다도 못하지 않다고 자부하였다. 그가 지제교로서 임금님 명령에 응해 시문을 지어 바치자 승정원 승지가 그 시문의 잘못된 곳을 지적하여 표를 붙여 놓았다. 기대승은 이에 노하여 심부름하는 아전을 꾸짖고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 유근이 도승지가 되었을 때 이호민이 임금님 명령에 따라 시문을 지어 바쳤다. 유근이 여러 곳에 표를 붙여 고칠 것을 이호민에게 청하니 이호민은 어떤 곳은 고치고 어떤 곳은 고치지 않았다. 이에 유근이 다시 아전을 ..

어우야담 / (50) 시인의 곤궁함

무릇 만물을 새기고 치장하여 만물에게 각각의 형체를 부여하는 것은 하늘의 재주이며, 만물의 조화造化를 열어 헤쳐 희롱하며 만물의 형태를 모방하여 형상해 내는 것은 시인의 재주이다. 오직 하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시인은 어찌된 물건이기에 하늘이 만드는 것까지 빼앗는 것인가? 재능 있는 자들이 좋지 않은 운명을 가진 것은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으니, 하늘도 또한 시기심이 많은 것인가? 이미 재주를 부여해 주고 어째서 그들을 곤궁하게 하는 것인가! 나의 벗인 성여학成汝學은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나 같은 시대에 그와 더불어 견줄 자가 드문데도 지금 60여 세가 되도록 아직까지 한번도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으니, 내가 항상 이를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그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이슬 맺힌 ..

어우야담 / (40) 진미 자라탕

이제신李濟臣, 김행金行, 김덕연金德淵은 어려서부터 서로 벗하며 함께 공부하여 별시에 응시하였다. 그 세 사람이 공부하며 지었던 책문을 모아 한 책冊으로 만들어 제목을 분주탑시군焚舟榻試軍이라 하였는데, 그 책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김행과 김덕연은 자라탕을 좋아하였는데 이제신은 침을 뱉으며 말하였다. "저처럼 흉악하고 추한 물건을 선비가 어찌 입에 가까이하는가! 선비 족속이면서도 자라를 먹는 사람은 그 사람됨이 어떠한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틀림없이 용렬한 사람일 것이네!" 김행과 김덕연은 부끄러워하면서 이제신에게 말하였다. “반드시 곤란한 일을 겪게 될 것이네!” 김덕연은 성산城山 호수 위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일某日 고기를 낚으며 연꽃을 감상하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김행과 이제신 두 사람이 약속대로..

어우야담 / (39) 강석에서의 소심증

박대립朴大立은 사서삼경을 모두 익숙하게 외웠으나 겁이 많아 강講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그때마다 못하겠다고 말하였고, 오히려 응구첩대하여 술술 외우면서도 매번 나가 달아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시관이 군사를 시켜 그를 부축하여 끼게 한 뒤 외우도록 시켰는데, 다 외우고 난 뒤 자리에는 오줌이 가득하였다.

어우야담 / (35) 도산 전투

경리經理 양호가 도산에 있는 왜적의 진을 장차 공격하려 할 때 왜장 가등청정이 지극히 견고하게 방어하였다. 적진 중의 보루와 벽루壁壘에 함정을 몰래 숨겨 놓고 일찍이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병법을 사용했으므로 그 성을 함락시키려면 반드시 잘 정탐偵探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나, 양호가 거느리고 있는 군사 가운데는 이를 할 만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항복한 왜인 둘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곳에 들어가겠다고 자청하였다. 양호가 말했다. ”너희들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반드시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야 하는데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그들이 말했다. ”적중에 들어가서 적의 머리를 베어 와 증거로 제시하겠습니다.” 이에 양호는 “좋다.”라고 허락했다. 그들은 면도칼을 꺼내어 머리..

어우야담 / (33) 광대 귀석의 풍자극

예부터 광대놀이를 설치한 것은 미관을 위함이 아니라 세교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데 있었으니 우맹과 우전이 그 예이다. 명종께서 대비전을 위해 진풍정을 대궐 안에서 베풀었을 때 서울의 광대 귀석貴石이 좋은 광대놀이를 진상하였다. 그는 풀을 묶어 꾸러미 네 개를 만들었는데 큰 것 둘, 중간 것 하나, 작은 것 하나였다. 그는 자칭 수령이라고 하면서 동헌東軒에 앉더니 진봉색리를 불렀다. 한 광대가 자칭 진봉색리라고 하면서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왔다. 귀석이 목소리를 낮추더니 큰 꾸러미 한 개를 들어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이조판서에게 드려라.” 또 큰 꾸러미 하나를 들어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병조판서에게 드려라.” 중간 크기의 꾸러미를 들어 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대사헌에게 드려..

어우야담 / (32) 홍수 피해

가정 임인년(1542, 중종 37)에 서울에 홍수가 나 대궐 냇물이 불어나자 홍문관 유신들은 목욕탕의 욕조를 타고 출입하며 숙직했다고 한다. 외숙고부外叔姑夫인 동지同知 이조李調에게 들었다. 만력 임인년(1602, 선조 5)에는, 내가 전한典翰으로 대궐에 들어가 숙직할 때였는데 큰 비를 만났다. 이때 대궐 안의 내와 도랑의 물이 넘쳐 들어와 홍문관의 서책이 물에 젖고 흩어져 없어지는 판국이었으므로 교대로 숙직을 들던 사람들이 책을 모두 머리에 얹거나 등에 짊어지고 출입하였다. 정덕正德 경진년(1520, 중종 15)에도 홍수가 져서 삼강三江이 넘쳐흘렀는데 백 년 동안에 홍수로 인해 이같이 큰 상흔이 남았던 적은 없었다. 만력 경진년(1580, 선조 13)에 나는 서호西湖에 살고 있었는데 큰 홍수가 갑자기 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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