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향해 던져라, 달에라도 떨어질테니
블로그 애서(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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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 75

어우야담 / (168) 소생한 사람을 외면한 우매한 백성

흥양興陽의 어떤 백성이 전염병에 걸려 죽어 산에 장사를 지냈다. 그 마을 사람이 밭에 나갔는데 무덤으로부터 은은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마을 사람은 달려가 죽은 사람 집에 알리고자 했으나 어떤 한 사람이 제지하며 말했다. "속담에서도 이르지 않았소? 죽었다가 소생한 자를 보고 그 사람의 집에 알려주면 도리어 죽는 화를 자신이 받게 된다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은 두려워하며 알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다음 날에도 또 그 소리가 들렸는데, 3일이 지난 후에는 조용해졌다. 가장 늦게야 그 말을 전해 들은 죽은 사람 집 아들들이 무덤을 파내어 보니 관 뚜껑이 열려 있고, 몸을 묶은 베가 풀어져 있었으며, 옷과 이불이 벌려져 있고, 죽은 시체가 엎어져 있었다. 아들들은 몹시 ..

어우야담 / 62) 삼척읍의 귀신 백두옹

옛날에 고려의 공양왕이 삼척에서 죽었는데 이때부터 삼척에는 귀신이 내리는 재앙이 있어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면 반드시 읍의 원님이 죽었다. 윤변尹忭이 삼척 부사가 되어 바야흐로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때 관찰사 송기수宋掑壽가 삼척부에 들어와 서죽루竹西樓 연근당燕謹堂에 머물고 있다가 기일을 당했으므로 정갈하게 재계한 후 문서를 물리치고 홀로 앉아 있는데 머리가 흰 어떤 한 노인이 창을 열고 틈으로 엿보더니 말했다. 부사인 줄 알았는데 감사로군! 이내 문을 닫고 가 버렸다. 송기수가 소리쳤다. 송기수는 비로소 그 노인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못 놀라고 두려워하며 찰방察訪을 불러 말했다.오늘 당장 강릉으로 떠나겠으니 급히 행장을 차리도록 하여라. 비록 날이 저물었지만 그래도 출발하겠다.마침내 송기..

꼬마 요정 / 첫 번째 이야기 / 그림형제

옛날 어느 곳에 구두장이가 있었습니다. 본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겨우 구두 한 켤레를 만들 수 있는 가죽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두장이는 날이 저물자 가죽을 재단하고 내일 아침에 있을 일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구두장이는 티없이 맑은 양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조용히 잠자리에 들어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은총에 맡기고 나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기도를 드리고 막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입니다. 완성된 구두 한 켤레가 작업대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구두장이는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잊었습니다. 구두를 이모저모 자세히 뜯어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한 군데도 잘못 기워진 구석이 없었습니다. 매우 공을 많이 들인 듯한 구두였습니다. 조금 있으려니 손님 한 사람이 가게로 들어왔습..

어우야담 / (159) 서천령을 이긴 병졸

우리 마을에 사는 서천령은 종실 사람으로 바둑 잘 두기로는 동방에서 제일이었으므로 당해 낼 자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바둑 두는 사람들이 그의 묘법을 전하며 서천령 수법이라고 일컫는다. 상번하러 온 나이 든 어떤 병졸이 하도에서부터 준마를 끌고 올라와 서천령을 뵙고 말했다. "어르신께서 바둑을 잘 두신다고 들었는데, 저와 겨루어 봅시다. 만약 제가 이기지 못한다면 이 말을 여기에 두겠습니다." 세 번 겨뤄 두 번을 상번한 늙은 병졸이 졌다. 마침내 그 말을 내놓고 가면서 말했다. 청하옵건대 어르신께서는 이 말을 잘 먹이십시오. 천경의 기한이 만료되면 그때 다시 한 번 겨루어서 이 말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서천령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알겠소." 서천령은 스스로 준마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말..

어우야담 / (154) 요귀를 물리친 나옹

나옹懶翁은 고려 말의 신승神僧이다. 회암사檜岩寺의 주지가 되어 부임하려고 할 때, 회암사에서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 납의를 입고 약립篛笠을 쓴 어떤 사람이 길 왼편에 엎드려 알현하였다. 나옹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빈도貧道는 절에서 밥을 빌어먹고 있는 중입니다. 대사께서 저희 절에 왕림하신다는 말을 듣고 감히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옹은 그 중으로 하여금 앞장서도록 하였는데, 그는 물을 건너면서도 하의를 걷지 않고 마치 평지 걷듯 하는지라 나옹은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윽고 알게 되었다. 절 문을 들어서자 그 중은 간 곳이 없었다. 나옹이 절에 들어서서 예불도 하지 않고 곧장 사랑각舍廊閣으로 가니 절 중들이 괴이하게 여겼다. 잠시 후 나옹은 절의 중..

어우야담 / (145) 19년의 기한

무릇 사람들이 일을 할 때면 으레 19년을 기한으로 한다. 진 문공이 밖에 있은 지 19년 만에 진晋나라로 들어가 패자覇者가 되었고, 소무는 오랑캐 융족戎族에게 있은 지 19년 만에 한漢나라로 돌아가 기린각에 형상이 그려졌으며, 장건은 오랑캐에 들어간 지 19년 만에 돌아와 박망후가 되어 이름을 천년에 전했으며, 범여는 19년 동안 천금을 세 번 이루었고, 사마온공은 19년 동안 낙양洛陽에 거처하다가 마침내 재상의 업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수신이 19년 동안 진도에 귀양 가서 독서하고 문장을 짓다가 다시 조정에 들어와서 정승이 되었다. 다만 월왕越王 구천句踐만은 10년 동안 백성을 기르고 재물을 모았으며, 또 10년 동안 가르치고 훈계하여 19년에 1년을 더 보태어 오吳나라에 복수하였다. 대개 1..

어우야담 / 144) 5월 5일생

대간 홍천민은 5월 5일생이다. 어렸을 적 부친인 부학副學 홍춘경洪春卿에게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배우다가 「맹상군전孟嘗君傳」 가운데, “5월 5일생인 자는 자라서 키가 문지방과 같아지면 그 부모에게 좋지 못한 일이 있다.” 라는 대목에 이르자, 홍천민은 크게 놀라 머리털을 곧추세우고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사람이 태어남에 명을 하늘에서 받는가, 문에게 받는가. 그 문을 높인다면 누군들 문 높이와 같아질 수 있겠는가.” 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조금 놓았으나 한시도 마음속에서 이 일을 떨쳐 버린 적은 없었다. 5세가 되었을 때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과 동쪽 성곽 밖에서 꽃을 꺾다가 도성암道城菴에 이르니 많은 중들이 역병에 걸려 얼굴은 때가 끼고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온 채 누워 있었다. 이를 본 ..

어우야담 / (138) 논개와 관기의 충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만력 계사년(1593)에 김천일金千鎰이 거느린 의병들이 진주에 들어와 주둔하면서 왜에게 항거했으나 성이 함몰되고 군사가 패하여 인민들이 모두 죽었다. 그때 논개는 짙게 화장하고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고서 촉석루 아래 깎아지른 듯한 바위 머리에 서 있었는데 그 아래는 만길 낭떠러지로 파도 속으로 직행하는 곳이었다. 왜놈들은 논개를 보고 반했지만 아무도 감히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왜장만이 용감하게 곧바로 나오니 논개가 웃으면서 그를 맞이해 유인하여, 마침내는 왜장의 허리를 껴안고 곧장 물에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 임진란 때 관기들 중에는 왜놈을 만났으나 욕을 당하지 않고 죽은 자들이 이루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비단 논개 한 사람만 언급할 것이 아니지만 ..

어우야담 / (132) 사후까지 준비한 유자광

유자광은 감사監司 규規의 첩 소생으로 남원에서 살았는데 어려서부터 재기가 넘쳐흘렀다. 유규가 어떤 암석 하나가 깎아지른 듯이 빼어난 것을 보고는, 자광에게 시를 짓도록 시키니, 즉시 다음과 같이 썼다.뿌리는 구천에 서리고기세는 삼한을 누르도다. 유규는 그를 몹시 기특하게 여기고 후일 크게 성취할 것을 알고서, 한서漢書를 하루에 한 대전大傳씩 읽고, 요천蓼川에서 은구어銀口魚를 하루에 백 마리씩 잡게 하여, 이것을 일상으로 삼게 하였다. 그러자 유자광은 책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고기의 수를 한 마리도 줄이는 일이 없었다. 그가 장성하여 문장을 잘 지으니 고을 사람들이 비웃으며 말했다. "네가 비록 문장에 능통해도 서얼에게는 벼슬길이 허락되지 않으니 무엇하겠느냐?" 서민들 중에는 그에게 거만하게 ..

어우야담 / (128) 학질에 무릎 꿇은 전림

이시애李施愛가 난을 일으킬 때 전림이 두려웠으므로 자객으로 하여금 그를 살해하도록 시켰는데 자객인 중은 전림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전림은 군관으로서 대장 한명회를 따르고 있었다. 중이 비수를 가지고 진 안으로 들어가자 대장 한명회가 하졸을 시켜 그를 묶도록 한 뒤 온갖 형벌을 다 가하며 심문하였으나 중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대장이 말했다. “전림, 자네가 가서 심문해라.” 중은 대장의 말을 듣고 그때야 비로소 그가 전림임을 알아채고는 한번 움츠렸다가 벌떡 일어나 묶었던 끈을 조각조각 끊어 버리고 군졸의 칼을 빼앗아 전림을 쳤으나 적중하지 않았다. 이에 전림이 주먹을 내리쳐 중의 머리를 부수니 그가 탄식하고 죽으면서 말했다. "내가 전림과 필적할 수 없구나." 일찍이 전림의 등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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